‘임종학(臨終學)’의 개척자라 불리는 스위스 태생의 미국 정신과의사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Elisabeth Kbler-Ross, 1926 ~ 2004)박사의 저서 <사후생(死後生)The life after death)>은 죽음에 대한 어떤 체험적인 앎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나에게 상당히 신선하게 다가왔었다.
또한 2001년, 권위있는 의학학술지 란셋(The Lancet)에 실린 근사체험자들에 대한 연구도 흥미로왔다. 그들의 공통적 열 가지의 체험요소는 1. 자신이 죽었다는 인식(50%) 2. 긍정적인 감정(56%) 3. 체외이탈 경험(24%) 4. 터널을 통과함(31%) 5. 밝은 빛과의 교신(23%) 6. 색깔을 관찰함(23%) 7. 천상의 풍경을 관찰함(29%) 8. 이미 세상을 떠난 가족 및 친지와의 만남(32%), 9. 자신의 생을 회고함(13%) 10. 삶과 죽음의 경계를 인지함(8%)이다.
‘체외이탈’은 근사체험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체외이탈을 생각하니 내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후의 일들이 떠오른다. 돌아가시기 며칠 전 병석에서 당신이 고향에 가서 누굴 만나고 보고 들은 바를 이야기하셨었는데 내 어머니는 “무슨 헛소리”냐고 그냥 흘려버렸었으나 돌아가신 후 알아보니 아버지가 묘사하고 기억하신 시간과 상황이 정확히 일치했었다.
그 며칠후 아버지는 돌아가셨다. 나는 장례 도중 몸이 지쳐 아버지 관(棺)옆에서 깜박 졸았다. 그때 비몽사몽간에 한복을 입으신 아버지께서 우리집 (ㄷ자 한옥)마당을 내려다 보며 빙빙 돌며 날아다니시기에 나는 반가워 “아버지!”하며 벌떡 일어났으나 아버지는 보이지 않았다.
이런 경험 이후 나는 사람은 영적인 존재이며 두뇌와 의식은 별개라는 걸 어렴푸시 믿게 되었다. 그후 죽음에 대해 공부를 더해보니, 죽은 사람들은 여전히 보이지않는 세상에서 잘살고 있고 우리를 지켜보고 있으며 중요하고 결정적인 순간에는 신비한 방법으로 우리와 영적인 교신도 한다는 것 또한 알게되었다.
지면상 자세히 서술할 순 없으나 내가 체험한 예를 한가지 들면, 내 인생에서 가장 고통스럽고 절망적인 순간에 나는 내 안에서 나는 소리인지, 하늘에서의 소리인지 구별하기 힘든 한없이 거룩한 음성을 들었다. 1992년 7월, 미국행 비행기 안, 구름 위에서였다.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느냐? 이제 다 끝났다!.” ”내가 넘치고 넘치고 넘치도록 부어주겠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무한한 사랑이 내몸을 감싸는 가운데 들리는 울림이었다. 잠시후, “네 병도 깨끗이 고쳐주겠다” 했다. 나에게 도대체 무슨일이 일어나고 있나 놀라고 있는데 조금후 아랫배가 뜨거워 오면서 웃몸이 덜컥 흔들림과 동시에 밑으로부터 무언가 목으로 올라온걸 느꼈다. 다시 좌석에 기대어 눈을 감고 있을 때 “이제 다 고쳤다.“는 음성이 또 들렸다.
나는 무언가에 홀린듯 모든게 믿어지지 않았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이었지만 무조건 믿고 감사하기로 했다. 당시 나는 한국에서의 심한 스트레스로 얻은 병명도 확실치 않은(후두암?)병으로 병원에서 응급조치만 받은후 석달치 약까지 소지하고 비행기에 올랐었던 때였다.
나는 서울의 아내에게 내가 체험했던 바를 전했더니 “성령을 받았고 병이 나았으니 가져간 약은 모두 버리라”고 했다. 나 또한 내게 기적을 행한 분은 분명 하나님이셨다고 굳게 믿었고 내 병을 다 고쳐주셨음을 전혀 의심치 않고 아내의 강력한 권고에 따라 가져온 약을 미련없이 과감히 다 버렸다. 그후 더 이상 의사나 병원을 찾지 않았다. 그러함에도 34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이렇게 건강히 잘 살고 있다. 이 얼마나 감사하고 놀라운 일인가?
글을 맺는다. 우리는 영적인 존재요, 영생하는 존재이다. ‘의식’은 ‘두뇌’에만 갇혀있지 않고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어느 곳에나 있고 작용한다는 것을 나는 믿는다. 문득 내 아버지가 젊은이들에게 남긴 “죽음을 공부하라”는 말씀이 생각난다. 이는 “죽음을 두려워 말고 올바르게 살라”는 뜻이었다는 것을 이제서야 깨닫는다.
왜? 올바르게 산 열매는 사후생(死後生)에서 ‘심판(審判)의 부활‘을 피해 ‘생명의 부활’로 가는 길이기 때문이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더 좋은 곳으로 여행을 떠나는 새로운 시작이니 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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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광렬/‘뿌라와 샘’ 네트워크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