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출산과 양육, 사회와 국가의 거룩한 책무

2024-03-28 (목) 최상석 성공회 워싱턴한인교회 주임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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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은 ‘세계 여성의 날’(IWD, 3월 8일)을 담고 있다. 지구촌 거의 절반인 여성들의 날이자 우리 모두의 날이다. 여성과 남성이 사회경제적, 문화적, 정치적 영역에서 동등하게 함께 권리를 누리는 세상을 향한 변화의 주체임을 다짐하는 날이며, 여성의 역할과 공헌에 경의를 표하는 날이다.

세계 여성의 날에, 여성들에게 변화의 주역이 되라는, 여성 민권운동가이자 마틴 루터 킹 주니어의 부인인 코레타 스콧 킹(Coretta Scott King)의 말이 울림으로 다가 온다.“여성들이여, 국가의 영혼을 구해야 한다면, 나는 여러분이 국가의 영혼이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멋지고 위대한 선언이다.

‘여성의 달’이어서 그런지 출산에 대한 기사를 많이 접했다. 2023년 한국의 출산율(出産率)은 0.72로 발표되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중 유일한 1 미만의 출산율이다. OECD 평균(1.61)에 비해 매우 낮은 수치이다. 학령(學齡) 인구감소로 해마다 초등학교나 지방 소재 대학들이 문을 닫고 시(市)군(郡)이 통폐합 되고 있다. 만일 이런 추세가 계속되면 2100년까지 고국 인구는 절반으로 줄어 들어, 국가의 안위와 겨레의 존속을 걱정하는 지경에 다다를 것이다.


이는 한국만의 염려가 아니다. 2023년 합계출산율 1.66인 미국도 출산율을 걱정하고 있다. 며칠 전 미국 공화당 대선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유력한 러닝메이트(부통령) 후보인 JD밴스 상원의원도 미국의 저출산(低出産) 위기를 지적하며, 현재의 저출산 기조가 지속되면, 미국도 “머지않은 미래에 더 이상 아이들이 거리에서 떠들지 않고, 아이들이 없어 학교를 채울 수 없는 ‘한국의 길'을 갈 수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하필, 한국!)

출산 여부는 부부가 함께 결정하고, 출산은 여성이 하지만, 출산율은 여성이나 가정을 넘어 우리 사회와 국가가 함께 풀어가야 할 중대한 문제이다. 출산율 감소의 원인을 여성이나, 출산을 포기하는 젊은 부부, 혹은 결혼에 적극적이지 않은 젊은 세대에게만 돌릴 수 없다.

출산율 감소의 원인이 개인보다는 우리 사회 안에 있기 때문이다. 출산에 따른 여성들의 사회적 경력의 제한, 결혼 및 출산에 대한 사회적 압력, 엄두도 못낼 앙등(仰騰)한 주택가격 및 주거비, 엄청난 사교육과 공교육 비용, 냉혹한 경쟁사회 체제, 취업난 등등이 그러하다. 정부나 지자체들은 출산율을 높이기 위하여, 아기를 낳으면 약 200만원에서 1000만원까지 지급하고 매월 아기 수당을 나이에 따라 약 50만원에서 100만원까지 지급하는 등 재정적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있지만, 이러한 정책들이 충분한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어 보인다. 이민자 유입을 통한 인구감소 보완도 대안 가운데 하나일 수 있지만, 긍극적으로는 적정 출산율 유지에 있다.

출산율 정책은 가볍게 접근해서는 안된다. 불과 1960년대(당시 출산율 6)와 70년대(당시 출산율 4.5)만 하더라도 한국 관공서에는 ‘아들 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산아제한 포스터가 붙어 있었고, 초등학교 미술시간에 산아제한 포스터를 그리는 일들이 있었다. 무지막지한 산아제한 정책 실시 약 50년만에 이제는 지구촌 OECD 국가 가운데 출산율이 가장 낮아, 정부와 지자체가 천문학적 예산을 쓰며 출산을 권유하는 시대가 되었다. 출산율의 근원적 해법은 정부의 인위적 정책을 넘어, 사회 공동체 구성원이 출산을 부담으로 여기지 않고 ‘행복감을 느끼고 인간의 따뜻함을 이웃과 함께 하는 휘게 라이프(hygge life)’의 삶을 사는 사회적 삶의 방식에서 나와야 한다.

부담 없이 출산과 양육을 할 수 있도록 사회적 삶의 방식을 만들어가고, 기업과 국가는 이를 위한 여건을 마련해야 한다.‘한 아이를 키우는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아프리카 속담이 있다. 출산을 꺼려하는 사회나 국가는 무언가 잘못된 사회다. 성경은 “자녀를 낳고 번성하라’(창세1:28), 곧 출산과 양육을 하느님이 명하신 인간 본래의 삶의 방식이요 축복이라 말씀한다.

출산과 양육 이제 산모나 한 가정의 부담이 아니라, 우리 사회, 우리 모두의 축복이며 기쁨이 되어야 한다. 또한 국가의 가장 중요하며 거룩한 책무(責務)이어야 한다. 아기의 탄생과 자람 곧 출산과 양육이 사회요 인류의 미래다. 이제는 사회가 산모(産母)가 되고 양육자가 되는 세상이어야 한다.

<최상석 성공회 워싱턴한인교회 주임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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