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종교인 칼럼 교회에 있으면 안 되는 것

2024-03-21 (목)
작게 크게

▶ 장준식 목사 /세화교회 담임

신약성경 사도행전 6장에 보면 제자들이 많아지면서 발생한 문제와 그 해결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에서 ‘제자’는 특별한 의미를 지닙니다. 그리스도교의 제자는 헬라어의 ‘마세테스’를 번역한 말입니다. 영어로는 ‘disciple’이라고 합니다. 보통 우리는 ‘제자’를 ‘배우는 사람’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소크라테스 당시 소피스트들이 철학교사로서 대중적인 활동을 주도하고 있었는데, 소크라테스는 소피스트들을 신랄하게 비판합니다. 그들은 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종속적인 관계’로 만들어 스승으로서 자신들이 행한 가르침에 대하여 제자들에게 금전적인 요구를 했기 때문입니다. 스승과 제자의 이러한 종속적인 관계가 마음에 안 들었던 소크라테스는 스승과 제자 사이의 민주적인 관계를 정립하기 위하여 ‘제자’를’ 함께 알아가는 동료(companion)’로 인식합니다. 그래서 그는 ‘마세테스’와는 다른 용어, 즉 ‘헤타이로스’라는 용어를 통해 제자를 표현합니다. 이렇게 스승과 제자의 관계 재정립을 통해 소피스트들을 비판하며 자신의 가르침에 대한 대가를 제자들에게 요구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교에서의 제자 개념은 이보다 더 깊어집니다. 마태복음 12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무리들에게 한창 가르침을 주실 때 예수님의 가족이 방문합니다. 그때 어떤 한 사람이 예수님께 가족들이 찾아온 것을 알립니다. 그랬더니,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누가 내 어머니이며 내 동생들이냐?” 그런 후, 손을 내밀어 제자들을 가리키면서 “나의 어머니와 나의 동생들을 보라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여기에서 예수님은 위의 소피스트들이나 소크라테스의 제자 개념과는 확연히 다른 ‘제자’의 의미를 알려주십니다. 예수님에게 제자란 ‘가족’입니다. 가족처럼 친밀한 사랑의 관계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교에서 말하는 제자의 의미입니다.

사도행전 6장은 이런 가족과 같은 제자들 사이에 발생한 불미스러운 일에 대하여 보도합니다. “그들 가운데 헬라파 유대 사람들이 히브리파 유대 사람들에 대해 불평이 생겼습니다. 매일 음식을 분배받는 일에서 헬라파 유대 사람 과부들이 빠졌기 때문입니다.”(1절b) 한 마디로, 제자 공동체에 ‘차별’(discrimination)이 발생한 것입니다. 일반 사회 안에서 차별이 발생해도 기쁨이 없어지고 삶이 힘들어지는데, 가족 공동체인 교회 안에서 차별이 발생했으니 차별을 당한 사람들이 얼마나 마음이 상했을 지, 그리스도교의 제자 개념에 비추어 보면, 정말 큰 일이 교회 내에 발생한 것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사도들이 지혜를 냅니다. 사도들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집중하고, 구제(봉사/디아코노스)하는 일을 전담할 사람들을 선발하는데, 성령과 믿음과 지혜가 충만한 제자들로 칭찬 받는 사람들 중에서 일곱 명을 선출합니다. 여기에서 성경은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것을 가르쳐 줍니다. 기도와 말씀 사역이 희미해지면 ‘차별’이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성령과 믿음과 지혜가 충만하지 못한 이들이 봉사의 자리에 있으면 ‘차별’이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리더십은 기도와 말씀 사역에 집중하고, 성령과 믿음과 지혜가 늘 충만하도록 날마다 자기를 살펴야 합니다.

교회(제자 공동체)에 있으면 안 되는 것은 차별입니다. 그리스도교에서 ‘제자’는 단순히 ‘배우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교에서 제자는 ‘가족’입니다. 친밀한 사랑으로 서로가 서로를 돌보는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제자를 생각하고, 교회를 떠올릴 때 ‘가족 메타포’는 매우 중요합니다. 성경에서 하나님 나라는 가족 메타포를 통해 표현됩니다. 우리 인간의 삶에서 가족만큼 친밀한 사랑을 떠올리게 하는 메타포를 찾아보기 힘듭니다. 가족이 지닌 친밀한 사랑의 메타포를 떠올린다면, 교회에 있으면 안 되는 것은 차별입니다. 사람들 사이에 친밀한 사랑의 관계가 현저히 부족한 요즘, 사회 곳곳에서 차별만 늘어가고 있습니다.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선취(미리 맛보기)이므로, 교회는 차별이 늘어가는 세상에서 피난처가 되어야 하는 사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차별을 물리치고 우리가 서로 더 사랑할 때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는 더 많아지고, 세상은 더 따스해질 것입니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