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 엄마의 엄마는 내게도 엄마

2024-03-14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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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문정/주부

저의 인생에는 엄마가 한 분 더 계세요. 바로 외고모할머니가 또 다른 저의 엄마예요. 고모도 아닌 외갓집 고모할머니면 엄마의 고모인데 어떻게 엄마가 될 수 있냐고요? 제가 태어나기 아주 오래전으로 돌아가, 저의 외할머니는 외할아버지와 결혼 후 저의 엄마를 낳고 엄마가 돌이 되기도 전에 헤어 지셨어요. 외할아버지는 선천적 언어장애를 가지고 계셨는데 그걸 외할머니가 인정할 수 없었던 것 같아요.
몇 년 후 외할아버지는 새외할머니를 들이셨고 그때부터 엄마는 새엄마 아래에서 자라게 되었지요. 새외할머니는 자신이 낳은 아이들보다 똑똑한 엄마를 구박하고 때리기 일쑤였는데 그런 조카의 불행을 가만히 두고 볼 수 없었던 외할아버지의 막냇동생, 외고모할머니는 엄마를 대구의 자취집으로 데려와 함께 살았어요. 세월이 흘러 외고모할머니는 아빠에게 엄마를 시집보내며 살고 있던 큰 한옥의 사랑채를 신혼방으로 내어 주어 그곳에서 오빠와 제가 태어났어요.
그렇게 대가족이 되어 행복하게 살던 중 어느 날, 하루아침에 발견된 엄마의 중병과 바로 이어진 임종은 가족 모두를 뿔뿔이 흩어지게 했어요. 저는 친할머니 댁에서 살게 되었고 아빠는 오빠를 데리고 재가하면서 그렇게 외고모할머니와의 인연은 희미해지는 듯 했어요.
그런데 첫 조카였던 엄마의 부재가 외고모할머니에게 큰 슬픔을 안겨줬고 그 슬픔은 저를 향한 그리움으로 이어져 외고모할머니는 방학때마다 저를 집으로 초대했어요.
감정은 뇌가 아닌 피부에 저장된다는 말이 맞는 것 같아요. 태어날 때부터 맺은 가족이라서 그런지 저는 외고모할머니가 전혀 낯설지 않고 함께 지내는 방학때가 무척 행복하고 즐거웠어요. 끝내 저는 중학교 1학년 때 시골 친할머니에게서 대구 외고모할머니에게 유학을 핑계로 자진해서 전학 왔어요.
인연은 그렇게 다시 이어져 외고모할머니는 제가 학업을 마치고 결혼할 때까지 저의 물질적 정신적 지원자가 되어 주셨고 지금까지도 변함없는 사랑을 주고 계세요.
외고모할머니는 미혼으로 평생 사업을 해오신 여장부세요. 동시대에 결혼한 평범한 아주머니들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아오셨지요. 젊으셨을 때는 운동에도 능숙하여 합기도 유단자로 새마을지도자 역임을 하시기도 했고 책을 좋아하셔서 인문 철학 및 불교경전 도서를 곁에 두고 읽으시며 저에게 늘 인생조언을 해 주셨어요.
참, 외고모할머니는 저와는 부모뻘 되는 31세 차이라 줄곧 저는 고모라 부르며 지내왔어요. 고모는 진정 행복한 사람은 어느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고 자신에게 의지하며 세상과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풀며 주인공으로 사는 사람이라고 말씀하셨는데, 그러고 보면 고모는 말씀 그대로 사시며 늘 행복해하신 것 같아요.
세월이 많이 흘러 이제 고모는 팔순을 바로 코앞에 둔 노인이 되어 계시네요. 이제 와서 보니 삶이 자비로 가득 찬 고모는 저의 엄마의 엄마였고 저의 엄마이기도 한 것 같아요. 이자리를 빌어‘엄마의 엄마는 내게도 엄마’인 고모에게 한 말씀 전하며 다음 주 목요일에 뵈요.
“엄마 사랑해! 내인생은 엄마가 있어서 정말 행운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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