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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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창 성 무너진 곳을 막아서는 사람들

2024-03-11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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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주리/ GMS 선교사

뇌수술이 진행되던 10시간…
환자인 나도 보호자인 남편도 홀로 그 시간을 버텨야 했다. ‘신 앞에 선 단독자’라는 인간의 정체성이 뼛속 깊이 사무쳤다. 머리가 열리고 뇌의 조직들이 드러나 생과사의 경계를 맴도는 동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수술대에 몸을 맡기고 ‘생’을 향한 도움을 기다리는 것이고 남편은 그 도움이 임하길 기도할 뿐이었다. 내 것인 듯 내 것이 아닌, 나의 생명이지만 나에게 속한 것이 아님을 전적으로 인정할 수밖에 없는 실존적 상황을 직면한 것이다. ‘세상에 던져진 존재’로 살다가 절망으로 끝을 맺는 벌거벗은 인생의 실체가 시리도록 가슴에 와 닿았다.

한편, 수술실 밖의 남편은 외로움과 절박함을 다른 방식으로 풀어내었다. 가족, 친지, 동역자들에게 수술상황을 공유하고 함께 기도해줄 것을 호소했다. 기도 외에 할 것이 없는 자신의 처지에서 기도의 지경을 최대로 확장시킨 것이다. 한 사람 두 사람 응답하기 시작한 기도의 지원이 채팅방을 가득 메웠고, 외로움과 절박함이 연대를 이루니 나약한 개인이 아닌 강력한 군대의 힘으로 용솟음치고 있었다.

수술 후 마취가 풀리고 의식이 회복되면서, 나는 이전에 경험한 적 없는 전혀 새로운 의식 세계와 마주했다. 꿈과 현실의 경계, 의식과 무의식의 뒤섞임 같은 세계… 영과 육의 연결 고리가 느슨하게 풀린 듯, 두 영역이 흐릿하게 따로 펼쳐져 보였다. 살아있으나 기력 한점 없이 빨래줄에 널린 옷처럼 널브러진 내모습이 보였다. 기도할 힘조차 없는 그런 처량한 모습으로 ‘신 앞에 단독자’로 서있다. 평생 고대하던 독대의 기회를 말 한마디 못하고 이렇게 날리다니…두 눈에 눈물이 주르륵 흐르는 순간, 저 멀리서 내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박주리 박주리…” 한사람 두 사람,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의 소리가 점점 더 가까워지더니 거대한 함성이 되어 울려 퍼졌다. 어느새 위로부터 내리는 밝은 빛과 따스함이 내 몸에 생기를 불어넣었고 그 거대한 함성은 내가 무너지지 않도록 떠받쳐주었다. 외로움과 절망의 자취가 순식간에 사라졌고 무너져 내리던 나의 성이 다시 세워졌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스스로 기도조차 할 수 없었던 내가 감히 전능자의 은혜를 입었고, 그것을 가능케 한 것은 나를 떠받쳐 올린 기도의 함성이었다. 그렇게 삶이 나에게로 왔다. 코끝의 호흡에 우연은 없고, 내가 살아 숨쉬는 것은 누군가들의 지극한 사랑의 결과임을 영혼 깊이 깨우친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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