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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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인형

2024-03-10 (일) 이중길 은퇴의사 / 포토맥 문학회,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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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유리창 안에 앉아있다 
흰색 노란색 여섯 마리 오리가
모두들 날개를 접고서 
창 밖의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
검붉은 새 한 마리 저 먼 하늘에서 날아와  
눈길을 주다가 사라진다

호기심을 안고 다시 되돌아온 새 
새와 새 사이에 놓여진 벽 
유리창을 앞에 두고 
서로 말을 건넬 수 없다는 것을 
한 무리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을까

하늘의 새가 유리창 밖에 부리를 대고  
둥근 눈동자를 궁글린다 
세상을 기쁘게 바라보듯이 
콕콕 두드리는 부리 


하늘에 떠있는 한 점 구름 
유리창 안으로 붙들고 싶은 마음 
알 수는 없겠지만 여섯 마리의 눈, 
그들의 흔들리는 눈빛을 본다

입술을 붉게 물들이고 그들은 
왜 말을 아끼는지, 
밖의 세상에 물들지 않아야 할 
무언가 깊은 뜻이 있을 것이다

태평양 건너 멀리 알래스카의 
깊은 바다에서 헤매던 기억과 
대서양 한 바퀴 돌며 세상을 배우고 
되돌아온 그들이 창가에 앉아 있는 뜻
깊은 무엇이 있을 것이다 

꽥꽥 울부짖고 싶은 고통을 
누군가의 손끝으로 엮어서 
오리들 가슴 속에 숨겨 놓아야 했던 
깊은 뜻이 있을 것이다
창 밖을 넘을 수 없는 사연 이상이

<이중길 은퇴의사 / 포토맥 문학회,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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