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미국이 우리보다 아이를 더 많이 낳는 이유

2024-03-09 (토) 김흥록 서울경제 뉴욕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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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합계출산율은 2021년 기준 1.66명이다. 같은 해 우리나라 0.81명의 2배가 넘는다. 지난해 4분기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1년 전보다 0.05명 감소한 0.65명으로 떨어졌다.

미국에서 근무하면서 지켜본 미국인의 출산에 대한 인식은 우리와 확연히 다르다. 미국에서는 아이를 낳는다고 해 가족의 삶이 계층 사다리 아래로 떨어질 것이라는 걱정을 하지 않는다. 이곳에서 만난 여성 회계사는 5년간의 출산과 육아 후 최근 재취업했지만 그만뒀다. 일자리는 원할 때 얼마든지 구할 수 있는 만큼 지금은 육아에 더 집중하고 싶다는 이유에서다. 출산 후 몇 년간 육아에 몰두한 여성이 기존에 일하던 수준의 기업이나 비슷한 직권에 재취업하기 어려운 우리나라와는 많이 다르다.

행여 부부가 출산 후 외벌이 가정이 되기로 결정하더라도 맞벌이 가정보다 더 많은 수익을 올릴 수 있는 기회가 한국보다는 많다. 대형마트인 월마트는 점장의 연봉이 보너스와 주식 등을 다 합치면 최대 40만 달러라고 한다. 우리 돈으로 5억 3,500만 원에 이르는 고연봉으로 보너스와 주식 보상을 제외해도 1년치 월급이 1억 7,000만 원 정도다. 현재 월마트 점장의 75%는 시간제 근로자 출신이다. 굳이 대학 졸업장이 필요하지 않은 자리다.


코스코는 올 1월부터 론 바크리스 신임 최고경영자(CEO)가 이끌고 있는데 그는 40년 전 코스코 매장의 지게차 운전기사로 입사한 인물이다. 최근 뉴욕에서 만난 한 금융인은 한 시설관리 업체의 경우 CEO 본인은 연봉 20만 달러를 받지만 신사업에 성과를 낸 직원에게는 인센티브를 합쳐 100만 달러 이상 고액 연봉을 지급한다는 이야기를 들려줬다.

기업의 성장에 필요하다면 그에 걸맞은 대우를 하는 기업 문화가 정착돼있다 보니 직원들은 자신의 실력과 성과에 맞춰 보상을 받고 계층 사다리를 타고 올라갈 수 있다. 이런 환경에서 자녀의 존재는 계층 이동에 도움이 되느냐 아니냐가 아니라 그저 가족의 행복이라는 관점에서 부모가 선택하면 된다.

반면 우리나라로 시선을 돌리면 한숨부터 나온다. 아이 한 명을 출산한다는 것은 경제적 부담이 그만큼 커진다는 계산으로 이어진다. 요즘 젊은이들이 비혼을 선택하거나 결혼을 하더라도 자녀를 낳지 않겠다는 결정 뒤에는 출산과 육아로 계층이 하향 이동할 수 있다는 두려움이 버티고 있다. 특히 출산 이후 여성의 경력단절로 외벌이가 되는 순간 중산층의 삶을 유지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는 게 대부분의 인식이다. 이러한 두려움은 고소득 부부일수록 더 뚜렷하다. 연소득 1,000만 원 미만인 부부 중 자녀가 있는 비율은 60.1%지만 연소득 7,000만~1억 원 미만인 부부는 46.2%만 아이가 있다. 여성이 다시 취업하기 쉽지 않으니 차라리 아이를 낳지 않는 선택을 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젊은이들을 짓누르고 있는 이러한 두려움은 정부가 복지 혜택을 늘리거나 아동수당을 쏟는다고 해서 단번에 해결되기는 어렵다. 미국의 경우 육아 수당을 주기 때문에 아이를 낳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유연한 노동시장 속에서 일자리를 구하기 쉽고 직장에서 충분히 보상받는 문화가 뒷받침됐기 때문이다. 대학 졸업장이 없어도 5년 이상 일하면 5억 연봉에 도전할 기회가 열려있고 40년 이상 근속한 직원이 실력과 성과를 인정받아 기업 CEO로 선임될 수 있는 기업 문화를 만드는 게 우선이다. 아이를 낳고 키우다가 다시 사회로 나오려는 여성들이 실력을 인정받아 직장을 선택할 수 있는 열린 고용 시장도 필요하다. 다자녀 가구가 팍팍한 현실에 고통 받기보다 그 자체로 축복받고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정상적인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

이럴 때 정부의 역할은 기업들이 육아와 출산, 성과에 걸맞은 직원 보상에 우호적인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예산 배정 등 모든 정책 운영의 틀을 출생 친화적 관점에서 다시 짜야 한다. 여성 고용과 출산 장려, 직원 보상에 적극적인 기업들이 세제 혜택 등 인센티브를 받고 남녀 모두 아이 키울 걱정 없이 직장 생활을 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드는 일이 그 첫 번째다.

<김흥록 서울경제 뉴욕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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