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오늘 하루 이 창 열지 않음닫기

여성의 창 뚝배기와 군자란

2024-03-08 (금)
크게 작게

▶ 김 미라/버클리 문학회원

“ 어머나, 울엄마, 아버지다!”

눈부신 3월 햇살에 주홍빛 군자란꽃이 활짝 피었다, 뚝배기에 앉아.
마치, 울 엄마 눈물이 뚝배기 가득 차서 넘치고 또 넘치고 고집 불통 울아버지 고뇌가 이제사 꽃다발 슬그머니 내밀듯이 아주 오래된 울아버지 깨진 뚝배기에 군자란 주홍빛 꽃다발이 활짝 피어 있었다.

나에게는 세상 최고의 천사 엄마와 최악의 악동 아버지가 계셨다.
언제나 환한 미소로 안아주시고 다독여 주시며 평생을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따뜻이 감싸 주시던 천사표 우리 엄마와 배려도 이해심도 없고 그 옛날 가부장적인 사고방식에 천하 독불장군이던 우리 악동 아버지.
천사 우리 엄마는 그 긴 세월동안 악동 아버지 등살에 기 한번 펴보지 못하고 언제나 주눅들어 사셨다.


우리 악동 아버지는 가족은 물론 그 누구와도 겸상을 하지 않으셨고 반찬도 같은 것을 두 번 올려서는 안 되었다.
어떤 음식이든지 방금 만든 새것으로, 우리의 대단하신 악동 아버지의 철칙? 이셨다.
엄마께서 아버지 음식을 만드실 때에는 간 조차 못 보게 하셨고 절대 말을 해서는 안되었다. 하물며 아버지 돌아가시기 전 3-4년 동안 엄마는 아버지 식사 준비 할때면 마스크를 착용 하셔야만 하셨다. 침이 음식에 튀면 안된다는 이유 때문에 말이다. 물론 식사 준비중에는 절대 화장실도 가면 안됐다.

특별히 울 엄마 최고의 고통은 삼시세끼 아버지의 뚝배기 밥이었다.
평생을 고집해 오신 울아버지의 뚝배기 밥 사랑, 심지어 엄마는 하루 저녁 뚝배기 밥을 세번씩이나 다시 하시기도 하셨다. 밥이 조금 질거나 되다는 이유 때문에 말이다. 무조건 순종 하시던 우리 엄마의 힘든 삶이 애잔해 어느새 내 눈시울이 뜨거워 진다.

악동 아버지의 군림은 칠남매 자식들에게도 대단 하셨다.
우리는 아버지 귀가 전에는 절대 잠을 자서는 안 되었다. “감히 가장도 안오셨는 데”.
하루는 언니 셋이 아버지 오시기 전에 몰래 자다 일어나 눈동자가 빨갛다는 이유로 밤새 두손 들고 벌을 서야 했었다. 그 엄하신 아버지 밑에서도 항상 미소를 잊지 않으셨던 자상하신 엄마 덕인지 웃음이 유난히 많던 우리는 어느날 “지지배들이 시끄럽게 크게 웃는다”는 이유로 언니들 세명이 엄동설한 한겨울에 내복 바람으로 방 밖으로 쫒겨나 두손 들고 몇시간 동안 추위에 벌벌 떨어야만 했었다.

하지만 지금 우리 칠남매 모이는 날이면 웃음꽃이 만발한다. 그 찬란했던 악동 아버지와 천사 엄마의 추억 때문에 말이다

오늘따라 3월 햇살이 참 곱다.
식탁 위 뚝배기에는 주홍빛 군자란꽃이 유난히 화사하다.
2년 전 나는 오랫동안 간직하고 있던 아버지 뚝배기에 엄마가 애지중지 키우시던 군자란을 옮겨 심었다.

언제부터인지 뚝배기에 금이가 더이상 밥을 지울수 없게 되었기에 말이다.
내 엄마 애뜻함과 악동 아버지의 서슬 퍼렇던 세월이 가득한 추억의 뚝배기,
그 뚝배기가 이제는 환한 햇살같은 엄마꽃 군자란을 품에 안아주고 있다. 새삼 그리움이 몰려 온다. 그 악동 아버지의 심통 까지도 애뜻하고 그립다.

지금 울 엄마, 악동 아버지 뚝배기에 앉아 주홍빛 군자란 꽃되어 활짝 웃고 계신다 .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