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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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창 귀인

2024-03-07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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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문정/주부

다들 ‘인생의 귀인’한 분쯤 있지 않나요? 저에게는 비구니 스님 한 분이 인생의 귀인이예요. 스님은 저의 습관적인 마음 작용을 바로 보게 해 주셨어요.
어린시절로 되돌아 가 보면 저는 마을에서 잉꼬 부부로 유명하셨던 조부모님 아래 무남독녀처럼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랐지만 젊은 엄마아빠와 살던 친구들을 늘 부러워했던 것 같아요. 그 부러움은 사춘기 즈음 내 마음을 슬픔으로 가득 차게 했고 내 머리를 번뇌로 가득 차게 해 학습부진으로 이어지기도 했어요. 할아버지의 교육열로 대도시로 나와 명문 사립 중학교에 다니고 있었지만 공부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가방만 나르는 학생이었거든요.
지금 생각해보면 학교에 매일 빠지지 않고 가방이라도 날라서 개근상을 탄 걸 보면 제 자신이 정말 대견해요. 그때도 분명 밝고 따사로운 나날들도 많았을 텐데 내마음은 암막 커튼을 친 것처럼 왜 그렇게 늘 깜깜했을까 싶어요. 곰곰이 생각해 보니 저는 늘 내 상처가 제일 커 보였던 것 같아요.
상처의 깊이는 지극히 주관적인 것 같아요. 자신만의 세계에서 그 깊이를 오롯이 자신이 측정하는 거니까요. 그렇게 늘 나의 상처에 과대평가 점수를 주며 세상과 사람을 마주하다 보니 세상은 늘 저에게 불안전 한 곳이었고 사람은 늘 저에게 불편한 존재였던 것 같아요.
그런데 어느 날, 비구니스님 한 분이 저에게“상처는 사실이 아니다. 사실이 아니므로 깊은지 혹은 얕은지 측정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다”라고 말씀하셨을 땐 정말 뒤통수 한 대를 맞은 듯 멍~했어요. 상처는 늘 곁에 있음을 인정하며 살던 나인데 상처가 사실이 아니라 하니 정말 어이가 없고 딴 세상이야기 같았어요.
스님께서는 미국의 유명한 정신의학자 데이비드 홉킨스 박사의‘의식지도’ 이야기를 하시며 자신의 마음에 스스로 세운 상처필터를 거쳐 세상과 사람이 내게 다가온다고 하셨어요. 그 상처필터를 인정하면 의식의 수준은 늘 낮고 삶의 질도 그 의식 수준과 비례한다는 말씀도 하셨어요. 상처필터는 허상이니 더 이상 관여하지 말라고도 하시면서요.
신기하게도 그후 선명하게 보였던 저의 상처가 희미하게 보이며 편안해지기 시작했어요. 아마도 스님의 조언은 저의 마음 속,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어떤 곳에서부터 잘 받아들여진 것 같아요.
하지만 마흔이 훌쩍 넘은 지금도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나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는 가끔씩 상처필터가 자동재생 하려는 걸 느껴요. 아직 갈 길은 멀지만 그 필터의 작동을 인지하며 저 스스로에게 미소를 보이는 걸 보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어요.
인생의 귀인을 만난다는 것은 천금을 얻는 것보다 더 값진 것 같아요. 그들은 우리가 본래 지니고 있는 완전한 아름다움을 보도록 이끌어 주시니까요. 한국에 계신 저의 귀인, 비구니 스님께 감사의 말씀을 전하며 다음주 목요일에 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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