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 수술실에서 만난 아이

2024-03-04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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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주리/ GMS 선교사

수술하는 날 아침.
평생 잊지 못할 날이다. 수술 준비를 위한 의료진들의 출입으로 새벽부터 병실이 분주했다. 겉동작은 지침을 따라 차분하게 움직였지만 긴장감으로 손발이 떨리고 진땀이 나는 것이 느껴졌다. 내 마음이 보였는지 얼른 남편이 손을 꼬옥 잡고 기도해 주었고, 우린 서로를 안심시키는 눈빛을 나눈 후 수술실로 이동했다.

수술실 안.
이미 여러 침대가 준비를 마친 채 대기중이었고 내 뒤로도 계속 들어왔다. 수술실에 들어서자 온몸이 덜덜 떨렸고 수술이 임박한 환자들 주변은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다들 어떤 사연으로 이곳까지 왔을까? 각자 사연은 다르지만 지금 이순간 우리의 마음은 하나가 아닐까? 오늘만큼은 기적이라는 것이 일어나 주길 바라는 간절함… 겨자씨보다 작은 믿음이라도 붙들고 싶은 절박함… 막상 본인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한 처지… 이런 상황에 처하니 마음이 단순하고 겸손 해진다. 문득 옆 침대에서 훌쩍이며 우는 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어린 환자인 딸 옆에서 젊은 엄마가 하염없이 울고 있다. 사연인 즉, 트럭 밑에 발이 깔렸는데 성장판이 망가져 수술 후에도 회복을 장담할 수 없다 했단다. 가슴이 미어졌다. 애기 이름이 뭐냐 물었더니 ‘서연’이라 했다. 겨우 눌러 두었던 나의 서러움이 서연이의 사연에 기대어 눈물을 쏟아냈다. 다시 볼 기회가 없을 그녀에게 온 마음으로 애원하듯 권고했다. 의사의 진단에 낙심하지 말고 하나님의 치료하심을 믿어보라고. 그리고 아득해지는 나의 의식을 힘겹게 끌어 모아 간절히 기도했다. “서연이 (가족)에게 긍휼을 베풀어 주소서!”

“뚜뚜뚜~”
심전도계 소리를 들으며 의식이 깨어났다. 의식이 너무 또렷해서 수술을 아직 안했나 싶을 정도였다. 의식 상태를 점검하는 질문들에 답한 후, ‘지금 몇 시냐?’ 물었더니 저녁 6시란다. 4시에 마칠 것으로 예상했던 수술이 2시간 연장되어 10시간 걸렸다. 아! 10시간 동안 분침이 시침처럼 무겁고 길었을 남편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하루 종일 가슴 졸이며 의식 없는 나와 온전히 함께한 한사람이다. 지금 생각하면 우습지만 그가 애태우며 감당한 그때의 10시간으로 나에게 지은 (혹 지을) 모든 잘못을 용서하리라는 진심이 마구 솟구쳐 올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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