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당연한 것들의 기적

2024-03-01 (금) 박주리 / GMS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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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종양 진단을 받던 날, 불편한 건 다리인데 문제가 머리에 있다는 사실이 쉽게 납득되지 않아 마음이 꽤 어수선했다. 하지만 현실이 낯설고 당황스러운 건 내 사정일 뿐, 뇌종양 전문가에게 난 그저 익숙한 뇌종양 환자 중 하나였다. 종양이 큰 것은 안 좋은 상황이지만, 위치가 좋고 양성이라 수술할 수 있으니 다행이라고 했다. 작은 크기라도 복잡한 뇌신경 속에 자리잡고 있어 손을 쓸 수 없는 환자도 있다고 한다. 그렇게 난 하루아침에 뇌종양 환자의 대열에 합류했다.

대학병원에 들어서던 첫날의 충격이 아직도 선명하다. 병원 입구, 주차장, 접수창구, 진료실 등 가는 곳마다 사람들로 넘쳐났다. 팬데믹 시기에 코로나와 무관한 환자들이 그렇게나 많은 줄 상상도 못했던 일이다. 그동안 병원을 찾지 않고 살아온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 특별한 은혜였음을 가슴 깊이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많은 환자들의 한숨과 신음소리를 외면한 채 나 홀로 행복했던 시간들이 죄스럽기도 했다. 우리가 일상이라고 여기는 당연한 것들이 사실 아주 특별한 선물이었음을, 모두가 누린다고 생각한 당연한 것들이 사실 예외적인 특권이었음을, 내가 누리는 그 어떤 것 중에 당연한 것은 하나도 없었음을… 몸과 마음의 세포 깊숙이 깨우침이 파고들었다.

한순간에 달라진 일상… 병원에는 세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유니폼을 입은 직원들, 평상복을 입은 보호자들, 그리고 환자복을 입은 ‘우리들’이다. 같은 환자복을 입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묘한 공감대와 연대감이 생긴다. 절박한 상황을 헤쳐 가는 거친 길이 덜 외롭다. 신기하게도 입원한 순간부터 병원 내에 평상복을 입은 사람들은 더 이상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일상의 무대가 달라진 것이다. 낯설지만 그리 나쁘지 않았다. 24시간 달고 있어야 하는 링거, 휠체어에 실려 여러 검사를 받으러 다니는 것, 정해진 시간의 병원 식사, 음식 섭취와 배변활동을 일일이 기록하는 것… 불편한 것이 많았지만 불평스럽진 않았다. 이따금 ‘내가 여기서 뭐하고 있나’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이 불쑥 올라올 때도 있었지만, 이런 병원 생활조차도 어떤 이들에겐 특별한 혜택이고 특권일 수 있다. 건강했을 때의 일상이 당연한 것이 아니었듯, 지금 병원에서의 일상도 기적 같은 나날이었음을 고백할 날이 올 것이다.

<박주리 / GMS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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