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의 N서울타워, 잠실의 서울스카이는 도심 한가운데서 서울의 풍광을 두루 조망할 수 있는 시설이다. 한양도성 북악산 코스에서도 경복궁을 비롯한 서울 원도심이 손에 잡힐 듯 내려다보인다. 외곽에서 서울 풍광을 조망하기 좋은 곳을 꼽으라면 경기 광주의 남한산성이다. 성남 하남 구리시에서부터 한강 줄기를 따라 내려가며 서울 도심의 고층빌딩이 한눈에 들어온다.
지금의 남한산성은 최고의 서울 전망대인 셈인데, 약 400년 전으로 시간을 되돌려보면 통한의 요새로 기억된다. “그 갇힌 성 안에서는 삶과 죽음, 절망과 희망이 한 덩어리로 엉켜 있었고, 치욕과 자존은 다르지 않았다. (중략) 밖으로 싸우기보다 안에서 싸우기가 더욱 모질어서 글 읽는 자들은 갇힌 성 안에서 싸우고 또 싸웠고, 말들이 창궐해서 주린 성에 넘쳤다.” 인조가 삼전도에서 청 황제 홍타이지에게 머리를 조아리기까지 명분과 실리를 두고 성 안에서 벌어진 상황을 김훈은 소설 ‘남한산성’에서 이같이 정리했다.
■구중궁궐 남한산성 행궁
남한산성은 전체 둘레 12㎞에 이르는 큰 성이다. 인조 4년(1626) 대대적으로 구축해 조선시대 산성으로 알고 있지만, 통일신라시대 문무왕 때 쌓은 주장성 옛터를 기원으로 보고 있다. 서울 중심부에서 동남쪽으로 24㎞ 떨어진 곳, 해발 400m 안팎의 험준한 산세를 이용해 방어력을 극대화한 성이다.
성을 완성한 지 10년이 지난 인조 14년(1636) 청나라는 조선에 형제 관계를 군신 관계로 바꾸자고 요구했고, 이를 거부하자 정묘년에 이어 9년 만에 다시 조선을 침략했다. 병자호란이다. 청군의 신속한 진격과 정보의 혼란 속에 인조는 강화도로 가지 못하고 남한산성으로 피신했지만, 곧이어 포위됐고 48일 만인 이듬해 2월 24일(음력 1월 30일) 성 밖으로 나가 삼전도에서 홍타이지에게 삼배구고두(三拜九叩頭)의 예를 갖춰 항복했다. 조선의 임금이 청 황제에게 세 번 무릎을 꿇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린 이른바 ‘삼전도 굴욕’은 우리 역사에서 최대의 치욕으로 남았다.
본격적으로 탐방에 나서기 전, 로터리주차장 왼편에 있는 남한산성 행궁을 먼저 들른다. 전쟁이나 내란 등 유사시 한양도성의 궁궐을 대신할 피난처로 사용하기 위해 남한산성을 축조하며 함께 지었다. 행궁 중 유일하게 종묘와 사직을 둔 가장 규모가 큰 행궁이다.
정문인 한남루를 통과하면 외삼문을 거쳐 정사를 논하는 궁궐의 중심 건물인 외행전, 임금의 처소이자 생활 공간인 내행전으로 이어진다. 가파른 계단과 기다란 담장, 방향이 조금씩 틀어진 문을 차례로 통과하는 구조다. 전각 처마 뒤로 산성 능선이 걸린다. 관광객의 조심스러운 발걸음만 빼면 사방이 고요하다. 일월오봉도 병풍이 쳐진 방은 임금의 집무실이라기에 지나치게 소박하다. 백성과 격리된 구중궁궐의 적막함이 처량하다.
■치욕의 역사 뒤로 화려한 서울 풍경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남한산성에는 5개의 탐방 코스가 있다. 그중에서 산성로터리에서 출발해 북문, 서문, 수어장대, 영춘정, 남문을 거쳐 원점으로 돌아오는 1코스가 가장 대중적이다. 성곽을 따라 이어지는 약 3.8㎞ 코스로 2시간이면 여유롭게 돌아볼 수 있다.
산성로터리에서 식당과 카페가 자리 잡은 마을을 통과하면 곧장 성곽길로 이어진다. 북문에서 서문에 이르는 길은 꾸준히 오르막이지만 말끔하게 포장된 도로여서 걷는 데에 힘들지 않다. 다만 그늘진 평지에는 눈 녹은 물이 얼어붙었다. 겨울 산행에선 쉬운 길이라도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
북문에서 낮은 성곽을 따라 약 1㎞를 걸으면 서문이다. 둥그런 석문을 통과하면 위례신도시로 이어지는 가파른 등산로로 이어지고, 성벽 오른쪽에 전망대가 설치돼 있다. 정면으로 잠실의 서울스카이 건물이 중심을 잡고, 그 뒤로 남산도 보인다. 한강 좌우로는 아파트와 빌딩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다. 국제도시로 성장한 서울의 면모가 화려하고 웅장하다.
인조가 청 황제에 항복하기 위해 성을 나선 곳도 이곳 서문이다. 삼전도는 지금의 잠실 석촌호수 부근으로 호수 한 귀퉁이에 ‘삼전도비’가 있다. 굴욕적인 강화협정을 맺고 청 태종의 요구에 따라 그의 공덕을 적은 비석으로 ‘대청황제공덕비(大淸皇帝功德碑)’라 적혀 있다.
서문에서 수어장대로 이어지는 구간은 남한산성에서 전망이 가장 빼어나다. 낮은 담장 너머로 성남, 하남, 서울의 도심 풍광이 계속해서 따라온다. 수어장대는 남한산성 서쪽 청량산 정상에 세운 장대로 성 안팎을 두루 굽어볼 수 있는 일종의 군사지휘소다. 남한산성의 5개 장대 중 유일하게 남았고, 성안의 건물 중 가장 웅장하다. 2층 내부에 걸려 있던 ‘무망루(無忘樓)’ 편액은 현재 바로 옆 별도의 보호각에 보관하고 있다. 인조가 겪은 치욕과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갔다 귀국해 북벌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숨진 효종의 원한을 잊지 말자는 뜻에서 영조가 이름 지었다.
수어장대 아래에 청량당이라는 사당이 있다. 남한산성을 축성할 때 동남쪽 책임자였던 이회 장군과 그의 부인을 기리는 사당이다. 공기를 맞추지 못한 이회는 공사비를 횡령했다는 누명을 쓰고 죽임을 당했고, 소식을 들은 부인은 한강에 몸을 던졌다. 후에 그가 맡은 구역의 공사가 가장 잘된 것으로 밝혀져 그의 누명도 벗겨졌다.
■고니 천국 경안천습지생태공원과 수청리나루
양평군 두물머리는 서울 시민이 즐겨 찾는 나들이 명소다. 강 건너편은 광주시 퇴촌면과 남종면이다. 이곳에도 호젓하게 강 풍경을 즐길 수 있는 장소가 있다. 경안천습지생태공원이 대표적이다. 1973년 팔당댐 건설로 일대 농지와 저지대가 물에 잠기며 자연적으로 형성된 습지로, 다양한 수생식물과 온갖 조류가 서식하는 생태의 보고다. 한강에 합류하기 전 인근 도심과 농경지를 거친 경안천의 수질환경 개선에도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습지 내부에는 산책로가 잘 정비돼 있다. 겨울철인 요즘은 갈대 군락이 서정을 자극한다. 제방 바깥쪽은 겨울 철새의 천국이다. 경안천에서 관찰되는 조류는 모두 121종, 그중에서도 멸종위기 2급이자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고니의 월동지로 널리 알려져 있다.
제방길로 나가면 ‘구구~ 꽥꽥~’ 새소리가 요란하다. 호수에 떠 있는 작은 섬 주위로 고니가 떼를 지어 이동하고 있다. 적게는 두세 마리 많게는 대여섯 마리가 가족처럼 붙어 다닌다. 물속에 머리를 막고 먹이를 잡기도 하고, 크고 흰 날개를 퍼덕이는 모습도 보인다. 잔잔한 호수처럼 마음을 가라앉히고 정화시키는 풍경화다.
우리나라에서 겨울을 나는 고니는 봄이 되면 북한과 중국 단둥, 내몽골을 거쳐 시베리아 중부 러시아 예벤스키군 습지에서 여름을 나고 다시 남하한다고 한다. 8,000㎞가 넘는 거리를 평균시속 51㎞로 왕복한다니 우아한 날갯짓에 엄청난 힘을 갖춘 조류다. 이곳 고니도 얼음이 다 녹으면 북으로 떠난다. 그 자태를 볼 수 있는 날이 많이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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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광주=글 최흥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