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 나 당신에게 사랑꽃물로 물들고 싶네

2024-02-23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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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미라/ 버클리 문학 회원

며칠 전부터 우리집 목련꽃이 하나 둘 꽃 봉우리를 터트리더니 이제는 우리집은 물론 온 동네가 꽃동네가 되어 있었다. 사방이 호두, 아몬드, 사과, 배 등 각종 과일농장으로 둘러싸여 있는 우리 동네는 봄이 되면 집은 집대로 각기 다른 꽃집이 되고 끝도 안 보이게 넓디 넓은 농장에 만발한 꽃들을 보노라면 지상 천국이 바로 이곳인 듯하다.

'꽃이 벌써 피면 안되는데'

왜? 변함없는 봄은 왔고 언제나 처럼 꽃들은 피었는데 오늘은 새삼 그 꽃을 기쁘게 반길수만 없는 것일까? 어제 아들이 말하기를 "엄마, 내일부터 비가 온대요, 더구나 홍수주의보에 태풍주의보까지요" 어쩌나, 앞뜰에 만개한 목련꽃이 새삼 애처로워 보였다. 한편으로는 '농장에 만발한 그 많은 꽃들은 어쩌나?' 사실 며칠전 우연히 오렌지 농장을 하는 지인이 하는 말이 "당분간 비가 오지 말아야 한다"며 걱정어린 말을 하면서 작년 재작년 두 해를 아몬드 농장을 비롯하여 몇몇 농장에는 비로 인해서 수확을 포기했다고 했다. 이유는 과일나무에 꽃이 피면 바로 그때 나비나 벌같은 곤충들이 꽃가루를 옮겨주는 수분작업을 해주어야 열매가 맺는데 꽃이 만발했을 때 거센 비바람에 꽃이 다 떨어져 버려서 열매가 거의 열리지 않았단다.


드디어, 초저녁부터 비가 한 두 방울 내리기 시작하더니 밤새 휘몰아 치는 바람에 세찬 빗줄기는 야속하게도 끝도없이 쏟아졌다. 우리 집 앞뜰에도 목련 꽃잎이 속절없이 빗줄기에 쓸려 내려가고 있었다. 그 모습에 목련꽃이 애잔해 보였다. 내 마음이 이런데 농장을 바라보는 이웃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매해 봄이 오면 온동네를 눈부시게 화사한 꽃동산으로 마음까지 꽃을 피우며 즐기기만 하던 나. 가까운 이웃 들에게는 생계가 달려있는 꽃일 거라고는 미처 생각 못했던 나를 반성해 본다.

사실 나는 그래도 내가 남을 많이 이해하고 폭넓게 사회생활을 잘 하는 편이라 자만하고 있었다.

요며칠 전만 해도 그랬다, 가까운 지인 생일 초대를 받아 열댓 명이 모여 점심을 먹었다. 그 중 언니뻘 되는 한 지인이 내게 와서는 귓엣말을 했다. 자신에 대한 속상한 심정을 조용히 말했다. "언니 힘내세요, 그까짓거 언니의 강한 믿음과 사랑하는 가족이 있는데 무슨 걱정이에요. 우리 함께 힘내보자구요. 언니 화이팅!" 그 언니는 평소에 삶의 모습이 반듯하고 말없이 베풀기를 잘하시는 내가 많이 본받고 싶은 언니이시다. 참하시고 심성이 고우신 큰 언니 같은 분인데 나에게 혼자만의 고민을 털어 놓으시다니 놀랐고 불현듯 고마웠다. 언니는 말끝에 "난 이상하게 미라씨가 편하고 뭐든 얘기를 하다보면 왠지 용기가 나, 나도 왜그런지 몰라" 아무 걱정이 없어 보이던 언니가 한참 동생 뻘인 나에게 속 얘기를 하다니 '그래, 내가 조그마한 위로와 힘이 돼 주어야지' 내가 나를 도닥여주고 있었다.

하늘엔 어느새 비 개인 하늘에 때 늦은 햇살이 쏟아지면서 '괜찮아, 함께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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