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 등식의 기본 성질 - 양변의 균형

2024-02-19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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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주리/ GMS 선교사

그 해 가을은 퍽 다채로웠다. 일생에 몇 번 안 겪을 일들이 한꺼번에 몰려왔고, 생사 화복의 소용돌이속에서 희로애락의 감정들이 여과없이 몰아쳤다. 팬데믹 와중에도 아들의 결혼식이 있었고, 그 경사를 앞두고 난 뇌종양 진단을 받았다. 결혼식, 뇌수술, 입원생활, 퇴원 및 미국 복귀, 수술 후유증으로 힘겨웠던 나날들… 돌이켜 보니, 어느 것 하나 쉽지 않았던 과정을 숨가쁘게 헤쳐 나왔고 다시 내자리에 서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그 해 봄부터 시작된 왼쪽 다리의 이상 징후… 미국 병원에서 적절한 의료책을 찾지 못하고 전전긍긍하던 중 아들의 결혼식을 위해 한국을 방문하게 되었다. 다리의 불편함은 시간이 지나면서 더 명확 해졌고, 운동화 외에 다른 신발은 신을 수 없었다. 지하도나 육교 앞에서 암벽등반을 하듯 마음을 다 잡아야 하는 상황… 이렇듯 전에 없던 증상이 몸에 더해졌는데, 병원에선 특별한 소견을 내놓지 못했다. 어찌 보면 다행이다. 당장 못 걷는 것도 아니고 통증이 있는 것도 아니니 의학적으로 별 문제가 없다면 견딜만하다. 하지만 마음이 개운치 않다. 증상이 분명한데 병의 실체를 찾아내지 못한다는 것이 납득이 안된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지인 의사분을 통해 뇌 MRI를 찍어 보기로 했다. 그 검사의 결과가 몰고올 거대한 폭풍은 감히 상상도 하지 못한 채…

MRI를 찍는 날 아침, 조용히 기도하는데 한 생각이 날 사로잡았다. 등식의 기본 성질, 양변의 균형이다. 한 변에 더해진 것이 있다면 다른 변에도 더해진 것이 있다. 현재 기울어져 있는 등식에 균형을 맞추는 어떤 결과를 마주하게 되더라도 너무 놀라지 말자. 돌이켜 보니, 잠시 후에 받을 충격을 그때 먼저 대비했던 거 같다. MRI 결과 모니터 앞에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지인 의사 선생님… 파르르 떨리는 손으로 내 등을 연신 쓸어 내리는 남편… 대학 병원 예약을 위해 동분서주하며 연락을 취하는 사무장님… 순식간에 내 주변에 폭풍이 몰아쳤지만, 놀랍게도 내마음은 태풍의 핵속으로 들어간 듯 고요하고 담담했다.

드디어 등식이 성립되고 양변에 균형이 맞는다. 마침내 드러난 병의 실체 앞에서 내 마음의 기류는 단순하고 분명했다. 문제가 완성되었으니 주어진 문제를 풀어야 한다. 잘 풀어낼 자신은 없지만 이미 답 앞에 서있는 듯 마음이 평안하니 신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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