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 다시, 햇살과의 약속을

2024-02-16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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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미라/ 버클리 문학 회원

참, 오랫만이 였지요
내가 그녀를 만난지도 어느덧 35년이란 세월이 흘렀답니다.

2024년, 올해는 유난히 비가 많이도 내리는 해 인것 같아요. 거기에 세찬 바람을 동반한 폭우까지 어찌나 짖굳은 날씨 였는 지. 그래도 묵묵히 1월은 가고 또 2월 역시 어느새 중반을 달리고 있네요.
지난 주말 설날 아침, 까치까치 설날 아침이 금빛 명주실 같은 화사한 햇살로 지어 만든 꼬까옷 갈아입고 함박 웃음 머금고 찾아 왔지요. 오랫만에 보는 화사한 햇살이 어찌나 반갑던지 나도 빗속에 젖어있던 묶은 가슴을 풀풀 풀고 그 햇살을 향해 가슴 활짝 열었더니 글쎄,
햇살은 어느새 금빛 명주실 같은 환희의 기쁨 되어 내 가슴을 온통 금빛 꼬까옷으로 갈아 입히고는 잠자던 감성에 꿈 많던 젊음이 넘치던 그 시절 처럼 황홀한 희망의 촉감으로 추억의 오솔길을 걷고 있었답니다.

35년 전 그 해 겨울은 유난히 세찬 눈 보라에 세상이 온통 꽁꽁 얼어붙어 모두의 마음까지도 추위에 위축 되어 있었지요. 그 매섭게 추운 엄동설한 눈보라 속에서도 설날은 어김없이 찾아 왔지요.
설날, 마침 하늘에서 아침이 온기 가득담은 눈부신 햇살을 새해 선물로 가져와서는 얼어 있던 우리의 마음에는 행복을 눈 덮인 동네는 어느새 금빛으로 반짝이는 동화나라 마을이 되었답니다. 사실 그 해 설날은 나에게 특별히 중요한 계획이 있었어요. 친한 이웃들과 올해는 우리 아이들에게 “올 한해의 삶” 앨범을 만들어 주기로 했지요.


햇살이 물오른 한낮이 되자, 여섯집 “올 한해의 삶” 프로젝트가 시작 되었지요.
나는 두 아들 설빔인 한복도 입히고 떡국도 끓이고 설 준비로 바쁘면서도 햇살 때문인지 내심 즐거웠답니다.
어른 열둘, 아이 열둘, 첫순서는 세배와 아이들 새해 소원 편지 읽기였어요. 열두 아이들 모두는 예쁜 한복을 입고 열두명 부모님께 다 같이 세배를 했지요, 그리고 아이들의 새해 소망 편지 읽는 시간. 어쩔수없어 나이 작은 순서로 읽기로 했지요. 열 한명 소원이 끝나고 마지막 자영이 차례가 왔는 데 불쑥 저에게 편지를 내밀면서 뒷 걸음쳐 , 자기 엄마 뒤로 숨더군요, 난 ‘아, 자영이가 나보고 읽어 달라’ 하는 구나 싶어 편지를 읽으려는 순간 “어!,” 깜짝 놀라서 읽을 수가 없더군요. 순간 눈물이 핑 돌면서 자영이 앞으로가 그녀를 꼭 끌어안고 고개를 끄덕이며 새끼 손가락으로 약속했답니다. 사실 자영이는 말을 못하는 선천적 맹아 였지요. 순간 모두들 어리둥절 하면서 “왜,뭐라고 썼는 데?” 여기 저기 궁금해 했는데 특히 자영이 부모님이 무슨 내용인지 궁금해 하셨지요.

‘선생님 안녕하세요. 나 피아노 가르쳐 주세요. 나도 피아노 치고 싶어요. 공부도 잘하고 피아노도 잘 할께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그때 나는 몇몇 아이들 과외공부와 피아노 렛슨을 하고 있었지요. 그중에는 자영이와 두살 아래 동생 소영도 있었는데 소영이는 학과 피아노 둘다 배웠고 자영이는 학과공부만 했지요. 피아노 렛슨은 상상도 할수 없었으니까요.
그후 자영이는 체르니100끝내고 체르니30 중반까지 배웠지요. 기적같은 일이였지만 우린 해 냈답니다.

오늘도 그 날의 눈부신 햇살이 빛나고 있네요. 잠 깨라고 “기적은 용기로 만드는 것!” 이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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