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살며, 느끼며] ‘미국은 특별하지’

2024-02-16 (금)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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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맨하탄 한복판 타임스스퀘어에서 경찰을 향해 총을 발사한 용의자가 난민 15세 청소년으로 확인됐다. 총기사고를 일으킨 소년은 지난해 9월 가족과 함께 베네수엘라를 떠나 이민자 수용시설에 거주해왔다고 한다.

경찰에 체포된 용의자는 지난 8일에도 타임스스퀘어 한 스포츠용품 매장에서 친구들과 함께 물건을 훔치고 나오던 중 경비원의 제지를 받자 총을 발사했다. 샤핑 중이던 브라질 여성 관광객이 유탄을 맞았었다.

지난달 27일에는 타임스스퀘어 인근 42번가 이민자 쉼터에서 경찰관 2명을 향해 주먹을 휘두르고 발로 차는 등 집단공격을 하는 난민 7명의 모습이 거리 CCTV 영상에 고스란히 담겨 큰 충격을 주었었다.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인 이들은 경찰이 이들을 다른 곳으로 이동하라고 지시하자 공격을 했다.


난민 수용자로 인한 치안 불안과 난민 범죄, 특히 폭력 및 절도가 증가하자 뉴욕시는 12일, 이미 통행금지를 실시하고 있는 시 난민 보호소 4곳에서 20곳을 추가, 24곳으로 통행금지를 확대실시한다고 밝혔다. 통행금지 시간은 오후 11시~다음날 오전 6시까지이다. 현재 난민촌 포함 200개 이상의 난민보호소에서는 7만여의 난민을 수용 중이다. 그렇다면 난민과 이주민의 차이를 알아보자.

유엔은 난민의 정의를 인종, 종교, 국적, 특정 사회집단, 정치적 견해 등으로 인한 박해의 공포를 피해 고국을 탈출한 사람으로 규정하고 있다. 난민(refugee)과 이주민(migrant)은 엄연히 다르다. 이주민은 더 좋은 일자리나 삶의 질, 교육 등을 이유로 고국을 떠난 사람을 말한다. 그러므로 일제치하나 정치적 망명을 하지 않은 뉴욕 한인들 대부분은 이주민에 속한다.

요즘, 맨하탄에 나가면 이민자 숙소로 쓰이는 호텔 앞이나 거리, 지하철에서 짐 보따리와 아이들 손을 잡은 난민들 모습을 수시로 본다. 가난, 내전, 폭력 등의 위협을 떠나 뉴욕으로 왔지만 일정기간이 지나면 숙소에서 퇴거해야 한다. 그러나 일자리를 얻는 경우는 드물다. 핍스애비뉴, 그랜드센트럴, 브루클린 브리지를 비롯 맨하탄 중심가 어디서나 길거리 불법 행상을 볼 수 있다.

진보성향이 강한 뉴욕은 ‘인권’을 앞세우며 대책도 없이 무조건 텍사스에서 버스를 타고온 난민들을 받아들였다. 수용시설이 가득 차자 감당을 못해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난민 자금이 늘어나자 공공서비스 예산 삭감이 불가피해지는 등 뉴욕시 부담도 늘고 있다.

적법한 절차를 밟고 이주한 한인들은 ‘신분미비자로 오랜 세월 고생하다가 힘들게 신분을 취득했는데, 그래도 먹고 살기 힘든데’ 하며 부담감을 말하기도 하고 대책 없는 난민 문제에 분통을 터뜨리기도 한다.

난민 위기의 가장 큰 문제는 이곳에서 살아남는 것이다. 삶의 기본인 음식, 물, 의료서비스, 성인 및 아동 교육, 고용 및 재정 지원 등으로 최종적으로 자립을 해야 하는데 그것이 참 어렵다.

미국의 오래전 역사를 잠깐 돌아보자. 서부 개발의 중요한 노동자로 기업가들은 중국 노동자를 선호했다.
그러나 이상한 질병이 발병할 때마다 중국인들이 동양에서 가져온 전염병이라며 일명 ’황색 공포(yellow fever)가 순식간에 무서운 속도로 미국 전체를 덮었다. 황색공포는 미역사상 최초로 중국인 이민금지법을 탄생시켰다. 1882년의 일이다.


미국의 역사는 이민의 역사이므로 먼저 온 이민자와 나중에 온 이민자들간의 갈등은 늘 있었다. 미국은 초기에는 앵글로색슨계 유럽인들이, 점차 가톨릭계 유럽인들이 이제는 아시아계와 라틴계 이민자들이 미국의 얼굴을 만들어 가고 있다.

‘E Pluribus unum! (여럿으로 구성된 하나, the one from the many)는 미국 정부의 문장(紋章)에 새겨진 표어이다. ’여럿으로 흩어져 있는 느슨한 하나‘는 20세기 초에 ’여럿으로 구성된 하나‘ 즉 도가니(melting pot. 영국계 유대인인 이스라엘 장윌의 1909년 연극 도가니에서 유래) 개념으로 수정되었다.

이들 난민들도 언젠가는 남미계 미국인이 될 것이다. (역사의 흐름이 엉뚱한 방향으로 틀지 않는 한.) 다문화주의가 서로 부딪치고 조화되고 타협하면서 미국의 힘을 결집하여야 한다. ’그래도 미국인데, ‘, 미국은 특별하지’ 등등이 정신적 힘이 되어 미국을 끌고나갈 것이다. 그래도 지금, 길바닥에 나온 이들에게 이번 겨울은 너무 춥고 길다.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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