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인사이드] 브링 그레이스 홈

2024-02-14 (수) 여주영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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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죄를 짓더라도 돈이 많으면 능력있는 변호사들을 고용해 법망을 잘 피해갈 수 있는 나라다. 미국을 시끄럽게 만든 유명 미식축구 선수 OJ 심슨의 살인사건도 그중의 하나다. 그는 유명 변호사를 고용해 말도 안되는 법의 혜택을 받았고, 자기 부인을 죽인 혐의가 매우 짙었지만 결국 풀려 나올 수 있었다.

한때 시카고에서는 어머니 재산을 노리던 누나의 사주로 누나의 동거남을 총격살해해 징역 100년형을 선고받은 한인젊은이 앤드류 서씨 사건으로 떠들썩했던 적이 있다. 그는 고의적인 살인을 저질러 자기 죄에 대한 합법적인 형벌을 받은 것이다.

그러나 미국 사법제도는 모범수인 경우 재량을 통해 보석이든 사면을 받을 수 있도록 자비를 베푸는 경우가 있다. 만약 서씨도 돈이 많아 유명 변호사들을 고용할 수 있었다면 결과가 달라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대부분의 가난한 범법자들은 예외없이 무전유죄의 결말을 맞이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하여간 앤드류 서씨는 얼마전 30년만에 모범수로 풀려나 지역사회로 돌아왔다. 그동안 미 전역에서 한인들이 그의 조기석방을 위해 물심양면으로 도운 결과로 한인커뮤니티의 파워를 새삼 느끼게 한 역사적 사건이다.

이곳 동부 뉴저지에서는 한인 그레이스 유씨가 생후 3개월된 아이를 살해했다는 혐의로 체포돼 거의 2년째 수감 중이다. 유씨는 뉴저지 버겐카운티에서 발생한 미숙아 사망사건으로 살인혐의로 기소된 후, 수감된 채 재판을 기다리고 있는 상태이다.

경찰은 엄마가 아이를 고의적으로 학대해 사망에 이르게 했다는 혐의로 체포, 그녀는 1급살인 혐의로 수감된 채 2년 가까이 인권유린을 당하고 있다. 만약 그녀의 가족이 힘센 변호사들을 여럿 고용해 대항했다면 과연 이렇게까지 되었을까.

다행히 미국에는 무전유죄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강력한 커뮤니티의 지원사격이 있으면 돈만큼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
뉴욕 및 뉴저지에서는 그동안 유씨를 위한 구명위원회가 발족돼 범교포 서명운동을 적극 전개해 왔다. 구명위원회가 현재 받은 서명은 무려 3만명이 넘는다고 한다.

이제 유씨 사건은 커뮤니티의 뜨거운 관심을 받으면서 싸울 수 있는 동력이 생겼다. 그녀의 한인 변호인은 사건의 팩트 검토 및 관련자들과의 면담 결과, 유씨의 무죄를 확신한다고 밝혔다. 마침내 지난 7일 뉴저지 버겐카운티 법원에서는 그레이스 유씨에 대한 심리가 진행됐다.

한인들은 앤드류 서의 석방운동과 그레이스 유 구명 운동을 통해 한인들이 힘만 모은다면 엄청난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기 시작했다. 미 도처에서는 한인들의 억울한 피해가 다반사로 발생하고 있다. 이럴수록 한인들이 뭉쳐 판사나 검사들이 한인 케이스들을 쉽게 여기지 않도록 압박을 가해야 한다.

며칠 전 거의 2년만에 판사 앞에 선 그레이스 유씨를 위해 법원 밖에서는 각 지역 한인단체장들이 모여 유씨에 대한 보석석방을 촉구하며 대규모 시위로 한인들의 결집력을 보여주었다. 이는 너무 잘한 일이다. 검찰의 편파적인 수사와 잘못된 법집행과정은 소수인종에 대한 차별행위임을 분명히 알려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확인시킨 법원 밖 한인들의 규탄시위는 한인들의 힘을 보여준 또 하나의 역사적 사건이었다. 똘똘 뭉치는 유대인들을 굳이 거론하지 않더라도 한인이 부당하거나 억울한 일을 당하면 한인이 하나가 된 힘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것이 무시당하지 않는 길이고 권리를 찾는 길이다.

그레이스 유씨 사건은 남의 일이 아니다. 우리는 비싼 변호사를 고용해야만 법을 유리하게 적용되도록 하는 유전무죄를 원하는 게 아니다. 한인커뮤니티의 결집된 힘이 변호사 100명보다도 강하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다. 그레이스 유씨가 하루속히 가정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고대한다. 무전유죄가 아니라 브링 그레이스 홈이다!

<여주영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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