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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봉꾼 러시아 황제와 정략결혼은 행운?… 그녀는 황제가 될 상인가

2024-02-09 (금) 라제기 영화전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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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봉꾼 러시아 황제와 정략결혼은 행운?… 그녀는 황제가 될 상인가

캐서린(오른쪽)은 주변 예상과 달리 러시아 황제 피터와 결혼한다. 하지만 캐서린은 꿈꾸던 것과 다른 현실과 마주하고 당황한다. [훌루 제공]

프러시아 귀족의 딸이다. 러시아 황제와 결혼을 한다. 피터(니컬러스 홀트)라는 이름의 황제 얼굴을 본 적은 없다. 정략결혼이다. 캐서린(엘 패닝)의 집안이 파산해 힘이 없으니 러시아 정치에 영향을 주지 않으리라는 러시아 고위층 판단이 작용했다. 캐서린은 러시아에 대한 환상이 크다. 화려한 궁궐의 외관은 궁중생활에 대한 기대를 키운다. 하지만 캐서린을 기다리는 건 야만적인 현실이다.

피터는 제멋대로다. 욕정을 아무하고나 해소한다. 가장 친한 친구인 그리고르(귈림 리)의 아내 조지나(채리티 웨이크필드)를 노리개처럼 대하며 수시로 잠자리를 한다. 피터는 전쟁 중인 스웨덴의 병사들 머리를 파티 소품으로 활용하는 잔혹성을 보이기도 한다. 그는 캐서린을 대를 이어줄 도구로 인식할 뿐 애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피터 주변 신하들, 귀족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캐서린의 눈에 러시아 황실은 미개하다. 피터는 계몽주의에 기대어 개혁을 추진하는 서방 국가들의 군주들과 달라도 너무 다르다. 백성의 안락은 관심도 없다. 기분대로 행동하고, 자신의 쾌락과 안위만을 생각한다. 캐서린은 낡은 건물을 개조해 학교를 만들 계획을 세운다. 피터는 흔쾌히 허락하나 여자를 교육시키려 한다는 사실을 알고선 약속을 물린다. 귀족 여성들은 캐서린에게 적대적이다. 캐서린은 궁중에서 고립무원이다.


귀족에서 몸종으로 전락한 마리앨(피비 폭스)이 캐서린의 친구가 돼 준다. 지성을 찾기 힘든 궁중에서 그나마 말이 통하는 이는 오를로(사샤 다완) 백작 정도다. 캐서린은 피터를 바꿀 수 있고, 러시아를 개혁할 수 있다고 믿는다. 과연 가능한 일일까.

캐서린은 똑똑하다. 인내까지 갖췄다. 하지만 황실과 국가 개조라는 야망은 번번이 벽에 부딪힌다. 구습의 벽은 두껍고 높다. 무엇보다 피터가 가장 큰 문제다. 황제가 세상을 바꾸지 않으면 캐서린 스스로 바꿀 방법은 없을까. 물론 있다. 자신이 황제자리에 오르면 된다.

드라마는 시종 유쾌하다. 손가락으로 죽은 자의 눈동자를 파내거나 사람을 잔혹하게 살해하는 등 끔찍한 장면이 종종 등장하나 화면을 장악하는 정서는 코미디다. 황제자리를 노리는 캐서린의 음모, 피터의 천방지축 언행 등이 종종 차가운 웃음을 제조한다. 피터가 허락한 남자 레오(서배스천 데 소자)와 캐서린의 사랑이 달콤한 분위기를 빚어내기도 한다.

캐서린은 러시아 계몽전제군주 예카테리나 2세(1729~1796)를 모델로 했다. 피터는 예카테리나 2세의 남편 표트르 3세(1728~1762)를 밑그림 삼았다. 러시아 역사에 착안한 상상력이 발칙하면서도 흥미롭다.

호주 작가 토니 맥너마라의 동명 연극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연극은 2008년 호주 시드니에서 초연됐다. 니컬러스 홀트와 피비 폭스 등 주요 배우 대부분이 영국인이다. 러시아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나 영국식 영어가 화면을 채운다. 18세기가 시간적 배경이라고 하지만 지금, 이곳에 대한 풍자로 읽히기도 한다. 남자들의 허풍, 가부장적 사고가 러시아 황실과 귀족사회에 국한된 것은 아니니까. 지난해 시즌3이 공개됐고, 국내에서는 시즌2까지 볼 수 있다. 대안역사를 내세운 드라마인 만큼 다양한 인종이 등장한다.

<라제기 영화전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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