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몇 년간 내 삶은 투병 모드이다. 어느 순간 감지된 왼쪽 다리의 불편함을 통해 오른쪽 뇌에 종양이 있음을 알게 되었고, 놀랄 여유도 없이 두 번의 뇌수술 (개두술과 감마 나이프 수술)을 받으며 분주하고 버거운 나날들을 헤쳐가야 했다. 그렇게 치료는 일단락되었고, 지금은 추적 관찰 중이다. 고작 두세줄로 요약되는 이 사건으로 인해 최근 내 인생은 엄청난 변화의 소용돌이에 휩싸였다. 정수리에 파인 수술 자국을 만질 때마다 지나온 치료의 과정, 그 굽이 굽이마다 마주해야 했던 복합적 감정들이 다시 선명해지곤 한다. 그러니 이 투병과정을 덮어두고 현재 나의 삶을 말할 수는 없다. 모든 이야기가 이 샘터에서 흘러나오기 때문이다.
사실 ‘투병’ 보다 ‘치병’이라는 말에 동감한다. 내가 아파 보니, 병은 싸워서 이겨내야 하는 순간도 있지만, 증상을 알아가고, 변화된 몸 상태에 적응하고, 회복을 위한 새로운 생활 방식을 찾아가는 시간이 훨씬 많다. 전투적 자세로 병을 대하면 금방 지치고, 혹시 패배의 전운이 감지되면 두려움으로 지레 포기할 수도 있다. 치병의 과정은 매순간 조마조마하지만, 미처 몰랐던 새로운 배움을 동반한다. ‘여성의 창’이 깔아준 이 멍석 위에서 지난 2년여간의 ‘치병 여정’을 풀어볼까 한다. 나에게는 회고, 정리, 다짐의 기회가 되고, 누군가에겐 공감, 위로, 격려가 되길 소망하면서…
팬데믹으로 세계가 공포에 빠지고 지구촌의 일상이 마비되어 버렸던 그 해 봄… 대면 활동의 중단으로 사회가 잠시 휘청거리는 듯하였으나, 놀랍게도 온라인이라는 돌파구를 통해 많은 활동들이 재개되었다. 나의 사역도 그랬다. 열방에서 활동하는 선교사들의 사연을 담은 책 편집, 어린이 영어 설교 자료 및 동영상 제작, 영어권 어린이를 위한 한글 교육 자료 제작 등의 사역으로 하루 하루가 꽉 찼다. 지친 몸을 보람이라는 보상으로 달래며 쉼 없이 달리던 어느 날, 공원에서 가볍게 조깅을 하던 중 어이없이 바닥에 넘어졌다.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도 있었지만, 발목에 힘이 빠지면서 몸이 중심을 잃고 땅바닥을 치는 순간 설명할 수 없는 불길함이 엄습했다. 마치 바다에 떠있는 작은 얼음 조각과 부딪힌 순간 그것이 거대한 빙산의 일각임을 직감하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