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아보카도 위에 그려진 섬아기집

2024-02-05 (월) 이은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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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섬아기집
오늘도 찾는 이들에게 잘 숙성된 시 한편 읽어주고 있겠다
둥글게 갈라진 아보카도 위에
섬하나 그려진다

비릿한 바닷바람 걸러질 틈도 없이
좁은 외길 사이에 두고 마주한 오두막집
오래된 빈집은 침묵으로 앉아있고
얇은 문풍지는 잠잠히 해풍을 지키고 있다

파도소리에 쓸려간 아기 울음 들으며
지금은 어디서 무엇을 할까
목마른 목소리로 물어보아도
비스듬히 누워있는 앙상한 고목
아린 이야기들 끌어앉고 비밀인양 말이 없다


조개껍질 같이 단단한 여인네의 손바닥도
과육이 익어갈 무렵이면 점점 흐물해지고
달빛 머금은 연두의 여린 호흡
굵은 옹이에 기대어 자랐다

차오른 초록이 집을 나선 자리
텅빈 자궁 안에 아직도 물내음이 물큰하다

*섬아기집:전남 통영시 한산면 매죽리에 위치한 장사도라 섬안 오래된 오두막집

<이은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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