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정재욱의 워싱턴 촌뜨기

2024-01-30 (화) 정재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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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요테 장아찌 누가 생각했나요?

정재욱의 워싱턴 촌뜨기
매달 둘째 주와 넷째 주 화요일 교육섹션에 정재욱 씨의 글을 연재한다. 소소하지만 공감이 가는 일상과 삶의 현장에서 보고 느낀 생생한 경험들을 독자들과 나눈다. 이 글 시리즈의 현판 ‘워싱턴 촌뜨기’는 미국의 수도에 살고는 있으나 여전히 낯설기만 한 ‘촌뜨기 신세’라는 작가의 뜻에 따라 붙였다. <편집자 주>


한국이 배달이면 여기는 투고(to go)다. 특히 코비드 시절에는 투고 주문을 해서 점심을 종종 때웠다. 

자주 찾던 한국식당의 투고 반찬은 네 가지. 김치 당연하고, 미역무침에 콩자반, 그리고 장아찌 그런 구성이다. 식당에 앉아서 먹을 적에는 반찬 하나 하나에 관심이 덜해서 잘 몰랐다가 꽁꽁 싸맨 투고 비닐 봉지를 풀면서 눈길이 간 것이 마지막 장아찌다. 한국에서 알던 장아찌와는 다른, 차요테(Chayote) 장아찌!


이제는 한국식당 반찬 대열의 고정 멤버가 된 듯 싶다. 가삭가삭한 식감에 적당히 배어든 간이 우리 입맛에 전혀 어색하지가 않다. 
차요테로 장아찌를 담근다는 얘기를 처음 들은 건 십년도 넘었다. 이건 한국식품점들의 상업적인 성공과도 관계가 있다. 

다른 나라 출신들의 식품점들을 압도하면서 대형 ‘인터내셔널 마켓’으로 커진 한국수퍼들 덕분에 여기 사는 한인동포들의 식탁도 다채로워졌다. 아무래도 아시아 음식이 먼저였다. 월남국수로 고수를 배우고 계모임 갖듯 모여서 월남쌈을 싸고 파드타이, 인도의 난이 외식 아닌 집밥의 영역에 들어왔다. 

중남미 음식들은 캘리포니아 롤에 싸면서 친근해진 아보카도 말고는 크게 주목을 받지 못해왔다. 아르헨티나에선 고기에 양념 없이 소금만 쳐도 맛있더라면서 쌍닻이 그려진(Dos Anclas) 바닷소금을 찾거나 한국 티비에서 건강식품으로 소개했다며 마테 차를 찾는 정도. 

그 정도라면 그냥 지나가는 유행에 그치고 말텐데 차요테 장아찌는 차원이 다른 얘기다. 월남국수보다도 더 의미가 있을 듯 싶다. 한국밥상의 특징인 반찬이기 때문이다. 
누가 처음으로 차요테로 장아찌를 담아먹을 생각을 했을까. 아무래도 차요테의 원산지인 멕시코와 붙어 있고 멕시칸이 많은 서부 엘에이나 텍사스가 아니었을까. 한인교회를 통해 입소문으로 퍼졌겠지. 원조를 찾으려면 찾을 수도 있지 않을까. 전미주한인동포의 이름으로 감사패라도 드리고 싶다. 

스쿼시 계통의 차요테는 중남미의 옛 스페인 식민지에서 두루 재배한다. 지금은 코스타리카에서 특히 많이 나온다. 거기서 유럽으로 수출된다. 

차요테는 멕시코와 함께 제국 스페인을 지탱하던 태평양 저 편의 필리핀에 전해졌다. 멕시코 나와틀 원주민어로 차요틀리(chayotli)가 차요테로 되었고, 이것이 필리핀으로 가서 사요테(sayote)가 되었다는데 중국 한자권으로 넘어가면서 합장과, 불수과(佛手瓜) 그런 이름이 붙었다. 그러고 보니 두 손을 모은 모양 같지 않나. 미국사람들 중에는 배와 비슷하다고 페어 스콰시(pear squash)라 부르기도 한다. 

 뒤져보니 한국에도 소개되어 재배농가들이 늘고 있다. 분명 여기 소문이 그쪽으로 넘어갔을 것이다. 한반도의 평균기온이 점점 높아지는 상황에서 아열대 작물인 차요테가 어느 정도 토착화에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고추 고구마 감자 담배 땅콩 목화 옥수수 토마토 배추…. 우리 식탁에 자리잡은 외래식품의 계보를 정식으로 이어갈 것으로 기대된다.


 좋은 식재료가 하나라도 더 늘어난다는 것은 고마운 일이다. 다만 어디에 어디에 좋다 뭐에 특효다 이딴식으로 약장사는 말았으면 좋겠다. 채소라는 사실 하나로 건강한 식생활에 자기 몫은 충분히 할테니 말이다. 그냥 장아찌 만들면 딱이다. 이거 하나로도 수요는 충분할 것이다. 

 짠 음식을 피하려는 분들은 무침 혹은 볶음으로 드셔도 괜찮다. 집밥 전도사로도 잘 알려진 양희경 배우는 깍두기를 담근다고 했다. 김밥 먹고 싶을 때 우엉 대신 차요테 장아찌를 넣는다는 분도 있고. 

 책으로 배울 때에는 좀체 상상이 가지 않던 식재료의 전파과정을 이렇게 당대에 목격하는 건 참으로 흥미로운 사건이다. 

 눈이 내려 발이 묶인 연휴에 집에서 차요테 장아찌를 만들었다. 차요테 다섯 개, 양파 한 개 반, 고추 다섯 개를 간장, 식초, 설탕 끓인 물에 투하해서 김치병으로 크게 한 병 넘게 나왔다.

<정재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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