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도로시아 랭, 사람을 만나다

2024-01-23 (화) 도정숙서양화가 (게이더스버그,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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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정숙의 문화살롱

▶ Dorothea Lange: Seeing People-내셔널 갤러리-

도로시아 랭, 사람을 만나다



1930년대 미국에 불어닥친 재난의 극복 과제는 국가적으로 시급하고도 절박한 문제였다. 그 시절 뉴욕 거리에는 국 한 그릇을 배급받기 위해 양복 입은 남자들이 줄을 섰고 과일 행상인은 수도 없이 많았다. 공업 중심지 시카고도 마찬가지였다. 뉴욕 주식시장의 대폭락으로 은행이 연쇄 도산했고 불황은 모든 분야에서 심각했다. 당시 프랭클린 D. 루즈벨트 대통령은 대공황을 타개할 책임을 지고 당선 후 뉴딜 정책을 벌였다. 미 정부는 경제 회복과 고용 증대가 급했지만 이 시기를 기록해야 한다는 사명감도 가졌다. 미국민이 대공황을 극복하고 2차 대전 후 번영 속에서도 그 시절을 잊지 않는 것은 그렇게 수집된 자료들 덕분이다. 미 의회 도서관 소장품 16만장의 네거티브 필름이 그 자료다. 그 중에도 도로시아 랭(1895-1965)의 사진 <이주민 엄마>는 대공황 하면 떠오르는 대표작이다. 주름이 파인 여성의 얼굴과 목, 상반신이 전면에 보이고 어린아이들이 그 목과 어깨를 둘러싼 모습이다.

미국 여성들의 사진 활동은 1차 세계대전 종군으로 이미 주목받았다. 도로시아는 뉴저지에서 자랐고 어려서 소아마비에 걸려 다리가 불편했다. 그는 사진작가가 되겠다고 카메라도 없이 여러 스튜디오에서 사진을 배웠다. 컬럼비아 대학교의 사진학과 강의를 들었을 뿐 독학이었다. 그는 20대 후반, 사진 일을 찾아 뉴욕에서 샌프란시스코까지 왔다. 서부의 예술 중심지인 샌프란시스코에서 그는 후원자를 만나 스튜디오를 차렸다. 초기에는 초상 사진 작업에 열중했다. 그 뒤 뉴딜 정책의 일환인 캘리포니아 긴급구호관리 책임자로 북서부에서 몰려드는 이재민들의 생활조건을 조사했다.


하루 수천 명의 이재민이 먼지 폭풍을 피해 캘리포니아로 유입되는 때 그는 조사팀에 합류하여 현장 사진을 찍었다. 샌프란시스코 거리에 실업자들이 줄을 서고 부두 노동자들이 파업을 하는 상황에서 그는 카메라를 메고 거리로 나왔다. 위기의 국민들을 사진으로 기록하는 정부의 프로그램에 그의 소작농과 빈곤한 이재민들의 노동현장 모습들이 보고되었다. 정부는 급기야 농촌 이미지를 기록할 사진작가들을 더 모아 그들이 찍은 사진을 궁핍한 시대의 생생한 자료로 보관한다.

도로시아는 현장을 누비며 카메라에 포착된 사람들에게 이 사진이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보낼 것이라는 설명도 했다. 그는 시골에 이주한 멕시코 노동자들, 일본인 소유의 목화 농장에서 일하는 필리핀인들도 찍었다. 농부들의 민감한 초상화를 통해 사회 변방의 삶의 이미지를 포착했다. 그 중에서도 힘없는 어린이와 노인이 주제였다. 이 사진들로 그는 1941년 구겐하임 상을 받았다. 언론의 큰 관심으로 국제 사진전시회가 뉴욕에서 최초로 열렸고 엄청난 인파가 몰렸다. 그 뒤 일본의 진주만 공격 후 새로운 임무를 맡아 군대 내 캠프에 재배치된 일본인들의 다양한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아시아를 여행하면서 한국전쟁 이후 침체된 사회 속의 한국모습과 헐벗은 아이들을 기록하기도 했다.

그는 말년에 캘리포니아 예술대학교 교수로 초빙되었고, 1950-60년대에 아일랜드, 아시아, 이집트를 돌면서 사진 에세이를 제작했다. 모든 작품은 캘리포니아 오클랜드 박물관에 그의 사후 기증되었다.

한 연구자는 그의 사진을 살피며 ‘그는 민주주의의, 민주주의를 위한 사진작가였다.’고 평가했다. 고독하고 고뇌에 빠진 사람들도 상류층을 찍을 때나 다름없이 기품 있는 개인으로 시민으로 올려놓은 작가가 도로시아 랭이었다는 설명이다.

도로시아는 말했다. ‘카메라는 카메라 없이 우리가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를 가르치는 도구’라고. 그가 포착한 사람들의 모습만으로도 시대의 아픔과 진실이 전해 온다.
내셔널 갤러리가 기획한 이 전시는 100여 점의 작품이 나왔고 3월까지 진행된다. 큐레이터는 필립 부룩맨.

도정숙서양화가 (게이더스버그, MD)
뉴욕, 서울, 워싱턴, 파리에서 30여회의 개인전을 가짐. 세계 각지에서 국제 아트 페어와 200여 회의 그룹전 참가. 매거진 CLASSICAL에 미술 칼럼 기고 중. 저서로 <그리고, 글>이 있다.

<도정숙서양화가 (게이더스버그,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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