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 백인경/버클리 문학회원

2024-01-18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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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슬픔 속에서 피어난 꽃”

참 오랫만에 그녀가 왔다. 더 깊어진 그녀의 눈동자는 형용하기 어려운 아름다움으로 반짝였다. 마치 맑고 깊은 호수위에 따뜻한 한줄기 햇살이 비추듯이. 그녀는 나의 카페 근처에 살며 항상 남편과 같이 들려 언제나 정원 옆 자리에 앉아 점심을 먹었었다. 항상 깊은 사랑과 온화함을 느끼게 해준 부부였는데 그녀가 처음으로 혼자왔다. 사랑하는 남편이 먼저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슬하에 자녀도 없는걸 아는 나로썬 마음이 아팠다. 하지만 그녀는 사랑하는 사람과 아름다운 이별을 했다고 했다. 지금은 혼자 걷는 새로운 길을 잘 걸어가고 있다고 하며 환한 미소가 얼굴 가득 넘친다. 그리고 자신이 시집을 출간 했다고 하며 시집을 선물로 주었다. 보통 시집은 얊은데 300페이지가 넘는 엄청 두꺼운 시집이었다.
그들, 메리와 로버트는 20대 초반의 나이에 대학교에서 만났다. 그 사랑을 키워 소샬워커인 로버트와 심리학자인 메리는 결혼후, 깊은 사랑과 영혼의 세계를 공유하며 솔메이트로 그가 세상을 하직할때까지 52년의 세월을 같이 걸었다. 오랜 단골이었던 그들 부부는 나에게 매우 인상적이었다.
2012년 여름, 로버트는 이곳저곳 뼈에 통증을 느껴 병원에서 진료를 시작했다. 그의 나이 74세였다. 처음엔 정확한 이유를 몰라 뼈 치료에 집중을 하다가 나중에야 식도암이 뼈에 전이 된걸 알게 되었다. 건강했던 그들은 이런 상황을 전혀 예상치 못했었다. 너무도 깊이 남편을 사랑했던 메리는 많이 당황했고 곧잘 슬픔에 빠졌다. 이미 뼈에 전이되어 수술은 할수 없다하여 키모데라피와 가능한 방법은 다 동원해 치료를 했지만 상태는 나아지지 않았다. 깊은 슬픔속에서 허우적 거리던 메리는, 어느순간 주체할 수 없는 감정들을 글로 써 내려갔다. 한번 터진 언어들은 막혀있던 둑이 터지듯이 마구 쏟아져 내렸다. 슬픔 속에서 시들이 피어나는 것이었다. 한번도 시인이 되겠다는 생각이 없었다 한다. 시를 쓰는 메리는 자신의 슬픔을 녹여낼수 있었다. 마음에 꽃이 피기 시작하니 모든것이 시가 되었다. 병마로 씨름하는 로버트와 자작시를 나누며 서로 위로를 했다. 어려운 가운데 부부는 더깊게 사랑하고 더 깊게 마음을 나눴다. 로버트가 병상에 있었던 1년 반동안, 이부부는 더없이 서로를 가깝게 느끼고, 삶에 대한 깊은 성찰과 죽음을 마주하며 모든 순간을 같이 했다 한다.
2013년 가을, 마침내 메리와 로버트는 이생의 마지막 이별을 했다. 그후 메리는 계속 시를 썼고 2015년에 첫 시집을 출간하고 2022년에 두번째 시집을 출간했다. 남편이 아프기 시작해서 부터 이별을 겪은 6여년 동안 그녀는 2000여편의 시를 썼다고 한다. 시를 쓰며 슬픔을 견딘 그녀의 영혼에 꽃이 핀것이다.
세상에서 자신을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이다. 그러기에 주체하기 힘든 슬픔 속에서, 방황과 혼돈의 흔들림 속에서, 견디기 힘든 어려움 속에서 글을 쓴다는 것은, 가장 친한 친구인 자신과 깊은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더 나아가, 깨어난 자아로 자연과 연결되는 것이고, 전혀 모르는 세상의 누군가들과 마음으로 연결되어, 서로에게 위안과 공감을 나누는 것이다. 이는 내가 글을 썼던, 그리고 계속 글을 쓰고 싶어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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