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4월 29일, 흑인 피해자 '로드니 킹 사건' 관련 무죄 평결에 분노한 저소득층 흑인들은 폭동을 일으켜 LA를 초토화시켰다. 그로 인해 흑인동네에서 장사하던 수많은 한인업주들은 그야말로 자신들의 전 재산을 다 날릴 판이었다.
일부가 망연자실하면서 불길과 연기를 바라보고 있던 그 시각, 몇몇 용감한 코리안 상인들이 총기와 무전기를 들고 자신들 가게 건물의 옥상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군대에서 배운 방법대로 24시간 보초를 서고 폭도들의 공격에 맞서 싸우기 시작했다.
LA지역 한국어 라디오 방송국은 이들과 교신하면서 그야말로 실시간중계로 특수전을 방불케 하는 정보전을 수행했다. 이들이 바로 ‘루프탑 코리안들(Rooftop Korean;옥상 위의 한국인)’이다.
무법천지로 변해버린 LA에 마침내 주 방위군이 투입되면서 5월 4일이 되어서야 폭동이 진압됐다. 수십명, 수백채 가게들의 피해가 충분히 나고도 남았을 지옥같은 일주일, 그 사이에 안타까운 한인 1명의 희생자 외에 상당수 코리안들은 스스로의 존엄을 지켜냈다. 2000여채의 가게와 시설들이 전소되거나 크게 파괴된 그 LA에서 말이다.
폭도들로부터 자신의 가게를 지키기 위해 조직적으로 단합해 합법적인 총기로 무장하고 지켜낸 소수민족 커뮤니티는 코리안들밖에 없었다. 이 사건을 멀리 에서 쳐다만 볼 수밖에 없었던 코리안 뉴요커들은 그때부터 코리안의 정치력 신장을 위해 나서기 시작했다.
LA폭동을 계기로 폐쇄적이었던 한인들도 인종간 연대와 화합의 필요성을 절감하기 시작했고, 자랑스러운 전세계 수도인 뉴욕의 일부라는 사명감을 가지고 지금까지 노력을 이어오고 있다.
그런데 지난해 말 브롱스에서 70대 한인 가게주인이 칼로 여러 차례 찔리는 사건이 있었다. 그는 지금 위중한 상태로 있다. 다행히도 공격한 용의자는 현재 체포돼 있는 상태다.
론 김 뉴욕주 하원의원과 각 한인단체 관계자들은 그의 가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복부를 수차례 찔려 산소호흡기로 생명을 이어가고 있는 업주와 한인커뮤니티를 위해 강력한 처벌을 촉구하는 메시지 전달을 위해서였다.
현재 뉴욕시는 거의 치안공백 상태다. 한인들 숫자가 별로 많지 않은 브롱스라 그런 것일까. 이 기자회견의 참여자는 불과 수십명 뿐. 만약 사건이 퀸즈 한복판에서 벌어졌다면 몇백 명, 아니 몇천 명이 그 가게 앞에서 시위와 기자회견에 동참해 주었을까.
최근들어 BLM 시위니 반이스라엘 시위니 해서 툭하면 건물이나 사업체들에 피해를 입히는 사례가 빈번하다. 한인 자영업자들의 생계가 걸려있는데도 마구 업소를 파괴하고 목숨까지 함부로 여기는 경우가 갈수록 늘고 있다. 더 이상 사태가 커지기 전에 다같이 하나되어 스스로를 보호하는 커뮤니티가 진정한 아메리칸들 아닐까. 인종혐오에 맞선 뉴욕 뉴저지 한인들 모두 강력한 제2의 루프 코리안으로 변모해야만 한다.
이번 브롱스 사태는 우리에게 주는 마지막 경종일 수도 있다. 타 인종 커뮤니티에서도 자영업자들이 이런 범죄의 피해자가 될 경우, 코리안들이 같이 나서서 목소리를 내주면 어떨까.
앞으로도 뉴욕내 아시안 혐오범죄는 그치지 않을 것이다. 코리안들은 물론, 타인종들과도 연대해야 같이 살아남을 수 있는 시대다. 주변 미국인 지인들에게 우리는 자랑스러운 루프 코리안이라고 당당히 말해주자. 100년전 안창호 선생부터, 4,29 정신에 이르기까지 우리 미주한인들에게는 주류사회도 감동하는 멋진 문화유산이 있다는 점을 자녀들에게 교육하자.
코리안 커뮤니티를 미 전역에 어필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소주, 김치같은 먹거리 홍보만으로는 부족하지 않을까. 루프탑의 교훈을 미 주류 언론에 파급시킬 똑똑한 한인들은 지금 차고도 넘친다. 아이비리그 출신 한인 2세들은 지난 반세기동안 너무나 많이 배출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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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영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