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정재욱의 워싱턴 촌뜨기<36>

2024-01-09 (화) 정재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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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운의 2불?

정재욱의 워싱턴 촌뜨기<36>
한국에서는 미화 2불짜리 지폐가 행운을 가져다 준다고 해서 세뱃돈으로 인기라고 한다. 한때 은행에서 액자에 넣어 고객 마케팅 사은품으로 쓰기도 했다나. 일본에서 2천엔 지폐가 그렇단다.

2불 지폐가 행운의 상징이라니, 미국에 와서 사는 동안 주변에서 들어본 적이 없는데 내가 워낙 과문해서일까. 한번 제대로 알아보자.

사실 한동안은 2불짜리가 있는지도 몰랐다. 마켓에서 일하면서 2불 지폐를 처음 봤다. 의외로 많이 들어왔다. 행운을 나눠주려는 손님들이 그렇게 많을 리는 만무이고, 아마도 1불짜리 동전과 더불어 달리 처분하기 귀찮아서일 것이다. 나도 쌓이는 족족 은행에 토스해 입금해 버리고는 했다.


이쯤되면 행운의 2불이란 말의 출처가 의심간다. 미국애들한테 물어보고 구글 검색해 본 바 결론부터 말하자면 행운이라고 반기기 보다는 도리어 멀리 하는 기피대상이다.
먼저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2불짜리에 대해서 잘 모른다. 잘못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보기 어렵게 귀하다거나, 이제는 찍어내지 않는다거나, 더이상 유통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데 다 틀린 말이다.

토마스 제퍼슨의 초상이 들어가 속칭 ‘톰’이라고 불리는 2달러 지폐가 처음부터 미국 제 3대 대통령인 그를 기념한 것은 아니었다.

‘톰’은 미 연방정부가 종이돈을 찍기 시작했던 1862년에 다른 액면들과 같이 태어났다. 처음에는 제퍼슨의 영원한 정적 알렉산더 해밀턴의 초상을 담았는데 우습게도 1869년에 새 시리즈로 바뀌면서 제퍼슨이 들어갔다.

2불 지폐는 처음부터 인기가 별로였다. 주된 이유는 하나, “재수 없다(bad luck)”는 대중의 통념 때문이었다. 미신에 잘 혹하는 사람들은 돈에 붙은 나쁜 기운을 쫓아낸다는 방편으로 귀퉁이를 접거나 뜯어내기도 했다. ‘타짜’의 지리산 짝귀처럼 그렇게 온전치 못한 돈이 유통이 잘 될 리가 없다. 도박을 할 때 주머니나 지갑에 2불짜리가 있으면 망한다는 징크스도 돌았다.

이렇게 2불짜리가 천대를 받은 것은 타락의 상징이었기 때문이고 그 배경에는 룸살롱 혁파운동에 이어 마침내 금주령까지 끌어낸 19세기의 미국 개신교가 있다. 그 뜨거웠던 경건운동은 선교사들을 통해 교회 다니면 술담배 안 해야 한다는 한국 개신교의 분위기에도 지금까지 남아 있다.

당시 경마장 도박의 마권 기본이 2불이었단다. 술집 화대가 2불이었단다. 우리 식으로 구두 한켤레 값 같은 은어 느낌이다.
부정부패의 상징이기도 했다. 정치가 스포츠처럼 취미였던 19세기에는 타락한 후보들이 유권자를 2불 지폐로 매수하려는 경우가 흔했다고 한다. 우리식으로는 막걸리, 고무신 선거라고 할까.

20세기에 들어와 연방 재무부는 2불을 활성화시키려고 여러 차례 시도를 했으나 별 소득이 없었다. 그리하여 1966년에 이르러서는 두 손 들고 ‘대중의 관심 부족’을 이유로 발행을 중단했다.
그러다가 십년 뒤 건국 2백주년을 맞아 뒷면에 독립선언서 서명 장면을 담은 새 디자인을 내놓으면서 2불의 부활을 시도했다. 1불짜리의 유통을 줄여 지폐 제작 비용을 절감한다는 목적이었다.


그런데 1976년의 재출시 역시 실패였다. 사람들이 새로 나온 2불 신권을 수집용으로 간직하고 쓰지를 않아서다. 첫 배포를 제퍼슨의 생일인 4월 13일에 맞추고 우체국에서 당일에 한해 돈에 우표와 소인을 찍어주는 캠페인을 펼쳤는데 그런 홍보활동이 2불을 소장가치가 있는 화폐로 오인하게 해서 오히려 장롱 속에 가두어 두는 역효과를 불렀다.

여하튼 지금도 2불짜리 지폐는 계속 나오고는 있는데 유통이 안 되다 보니 닳아서 폐기해야 하는 비율이 낮아 그 수요가 매년 찍을 정도가 못 된다. 금액 기준으로 볼 때 돌고도는 돈의 0.001퍼센트에 불과하다.

앞에서 말한 19세기의 인식만으로는 21세기에 이르도록 여전히 저조한 이유를 다 설명할 수 없다. 사람들이 1과 5의 배수를 선호하더라는 정도의 경험칙이 있을까.

<정재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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