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오늘 하루 이 창 열지 않음닫기

[인사이드] 전쟁의 얼굴

2023-12-22 (금) 민병임 논설위원
크게 작게
올 한 해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이스라엘과 무장정파 하마스, 두 전쟁으로 세상사람들이 모두 전쟁의 덫에 치여 살고있다. 전쟁 전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스라엘이 국교 수교를 하려던 평화 무드는 물건너 갔고 중동, 유럽, 미국에서조차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측으로 편갈라서기에 나섰다.

2022년 2월24일 시작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전쟁, 올해 10월7일 무장정파 하마스의 이스라엘 남부에서의 학살과 인질 납치로 시작된 이스라엘과 하마스, 이 두 전쟁은 다른 지역에서의 분쟁과 전쟁을 관심조차 없게 만들었다.

동시 진행 중인 두 전쟁이 장기전이 되면서 중동 위기는 점점 심해지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경제도 완전회복 안되었는데 전쟁이라니, 모두가 위축되고 지쳐가고 있다.


겨울을 맞아 가자지구와 우크라이나 전쟁터에는 극심한 죽음에의 공포와 굶주림과 추위에 겨울철 호흡기질환까지 겹쳤다. 전쟁이 무엇이기에 무고한 이들을 생지옥 속에 살게 하는가.

근대역사 중에 미국전쟁이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은 잘 알려져 있다. 그러니 한국과 가까운 아편전쟁과 메이지유신이 일으킨 전쟁에 대해 간단히 살펴본다.

아편전쟁은 영국이 일으킨 가장 부도덕한 전쟁이었다. 중국에서 수입된 차문화가 영국인 지상최고의 음료가 되면서 영국은 중국에서 차를 전량 수입하자 적자무역에 시달려야 했다.

세계각지에 식민지를 건설하는 ‘해가 지지 않는 나라’ 영국은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아편을 이용하기로 했다. 인도산 아편을 청나라에 밀수출하는 편법으로 이익을 챙겼고 청나라 관리나 서민들은 너도나도 아편 중독자가 되었다. 아내와 자식까지 약값 마련을 위해 팔아넘길 정도였다.

영국 국회에서는 나라를 불명예스럽게 만드는 부도덕한 전쟁이라는 주장도 있었지만 양심보다 국익을 원하는 목소리가 더 강했던지라 1939년 영국은 청나라와 아편전쟁을 치렀고 패자 청나라는 홍콩을 영국에게 주어야 했고 155년만인 1997년에 중국으로 반환되었다.

또한 1868년 메이지 유신은 일본 개항부터 부국강병, 산업육성 등 문명개화와 일본의 근대화를 가져왔지만 조선을 비롯 동아시아는 비극의 시작이었다.

일본이 조선을 침략할 때 내세운 정한론(征韓論), 일본을 서양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한반도를 점령해야 한다는 논리, 조선을 희생양 삼아 일본을 발전시킨다는 논리는 일본이 칭한 대동아전쟁의 빌미가 되었다.


대만을 침공하고 강화도 사건을 일으키고 1894년 청일전쟁, 1904년에는 대한제국과 만주의 지배권을 놓고 러일전쟁을 일으켰다. 1945년 패망하면서 메이지유신 이후 쌓아올린 전쟁국가는 막을 내렸다지만 일본에는 여전히 군국주의 정신이 살아있다.

언제 또 발현할지 모를 일이다, 군함도, 사도광산, 미쓰비시 기업 모두 메이지 유신 시대의 유산, 전범 기업은 아직도 조선인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반성이나 사과가 없다.

우크라이나 여성 소설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전쟁은 여성의 얼굴을 하지 않는다‘(1985년)는 제목 자체가 원래 여성이란 오랫동안 생명을 품고 있다가 생명을 낳아 기르는 존재라서 전쟁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전쟁은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까. 스페인 화가 살바도르 달리는 1940년 작 ‘전쟁의 얼굴(The face of war)’을 해골로 표현된 메두사의 얼굴로 그렸다. 사막 한가운데 놓인 참수된 머리통은 펑 뚫린 눈 자리에 해골이, 입에도 해골이, 총 8개의 해골을 그렸다.

얼굴을 에워싼 뱀이 혀를 날름거려도 비명 조차 못지르며 썩어들어가는 참백한 해골은 전쟁으로 인한 어두움과 희생자의 참상을 보여준다. 전쟁터의 고통과 불안, 인간의 공포와 광기를 형상화한 작품이다.
전쟁은 여성의 얼굴도 아이의 얼굴도 남성의 얼굴도 아니다. 결코 인간의 얼굴이 아니다. 비열하고 비겁하며 잔인하고 사악한 악마의 얼굴이다.

크리스마스가 오고 신년이 온다. 우리는 ‘하늘엔 영광, 땅에는 평화를!’ 외친다. 세계를 갈라놓은 두 개의 큰 전쟁에서, 중동지방과 우크라이나 지역에 진정한 평화는 언제나 올까?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민병임 논설위원>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