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깊은 감동을 받은 동화나 이야기는 아이들의 성장에 오래도록 영향을 미치고 기억에도 남을 것이다. 어렸을 때 읽은 이 이야기는 자랑하지 말고 교만하지 말라는 교훈을 주었다. 글쓴이가 누구인지 잊어먹은 것은 조금 아쉽다.
옛날에 백두산에 장사 삼형제가 살았다. 그 형제들은 각기 맨손으로 호랑이도 잡을 만한 장사들이었다. 그 중에서도 막내가 두 형을 넘어서는 힘을 자랑했다. 그 힘을 산속에서 썩히는 것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형들도 세상에 나가 힘 자랑을 해 보라고 부추기도 했다. 막내는 마음을 굳히고 팔도를 돌아 다니며 힘 자랑을 하겠다고 나섰다. 그가 ‘묘향산’에 도착했을 때 깜짝 놀랄만한 사람을 만났다. 그 사람은 달구지에 잔뜩 실을만한 나뭇짐을 커다란 지게에 지고 가는 것이였다. 그 사람은 한쪽 다리를 약간 저는 것 같았는데 걸음은 맨몸으로 걷는 자기보다 빨랐다.
해질 무렵 평양 성문에 당도했을 때 빈 지게를 지고 성문을 나서는 그 장사를 다시 만났다. 막내는 그 장사 앞에 엎드려 ‘형님’이라고 불렀다. 자기가 힘이 세서 팔도 힘자랑에 나섰는데 형님을 뵈니 자기가 부끄러워졌다고 고백했다. 그 장사는 빙그레 웃으며 묵묵히 걸음을 옮겼다. 막내는 장사를 따라 그의 집까지 왔다.
집에 와서 또 한 번 놀랬다. 아궁이에 불을 지피는 사람을 보았다. 그는 통나무 가지를 맨손으로 쪼개어 아궁이에 넣고 있었다. 막내는 형님이라 부른 장사를 돌아보며 누구시냐고 물었다.
그는 살짝 웃으며 자기 형님인데 자기보다 더 힘이 세다고 했다. 그리고 손짓으로 막내를 부르고 함께 마루에 앉았다. 자기가 겪은 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는 씨름판을 찾아다니며 힘 자랑을 했다. 우승한 상금을 노자로 써가며 몇 해를 팔도 유랑을 했다.
어느 남도 땅에 이르렀을 때 노자돈도 떨어지고 시장하여 어느 주막에서 국밥을 연거퍼 다섯 그릇을 비우고 그냥 일어나려고 하자 주모가 마당까지 따라오며 밥값을 내라고 소리 질렀다. 그는 주모를 살짝 밀었는데 서너 걸음 떨어진 마당에 ‘아이구’ 소리내며 쓰러졌다.
마당 가운데 평상에서 식사를 하던 호리호리한 선비차림의 남자가 “ 어허, 힘깨나 쓰는 모양인데 돈이 없으면 양해를 구해야지 아녀자에게 그렇게 힘을 쓰면 되나” , “너는 먼데 참견이야?” 그 선비에게 주먹을 날렸다.
순간 자기 몸이 붕 떠올라 울타리 너머에 떨어졌다. 눈앞이 깜깜하고 다리를 움직일 수 없었다. “힘을 좋은 데 써야지 잘못 쓰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네. ” 그는 주모에게 밥값과 여유돈을 쥐어주며 그가 걸을수 있을 때까지 돌봐 주라며 홀홀히 떠나 갔다.
이야기를 다 들은 막내는 힘자랑을 나선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그는 하룻밤을 거기서 묵고 다음날 이른 아침 큰절로 인사를 드리고 백두산으로 돌아갔다. 세상은 넓고 자기보다 실력이나 재력이 뛰어난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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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정길/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