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오늘 하루 이 창 열지 않음닫기

“나 먼저 그림 속으로”… 퇴계 이황의 청량산 가는 길

2023-12-15 (금) 안동=글 최흥수 기자
크게 작게

▶ 안동 예던길과 주변 여행지

경북 안동 도산면 단천리의 예던길 전망대. 퇴계는 청량산을 오가며 강변으로 이어지는 이 길을 ‘그림 속으로’ 들어가는 길이라 극찬했다. 아쉽게도 이곳부터 길은 강변이 아니라 산으로 연결된다.

“산봉우리 봉긋봉긋 물소리 졸졸, 새벽 여명 걷히고 해가 솟아오르네. 강가에서 기다리나 임은 오지 않아, 내 먼저 고삐 잡고 그림 속으로 들어가네.” 퇴계 이황(1501~1570)이 이웃하며 살던 친구이자 조선 중기의 문인 이문량(1498~1581)에게 썼다는 글이다. 요즘으로 치면 휴대전화 문자쯤 될 텐데, 동행하기로 한 길동무가 약속한 시간에 나타나지 않아 먼저 간다는 메모를 멋들어진 한시로 남겼다. 퇴계가‘그림 속’이라 표현한 곳은 그가 살던 경북 안동 도산면 온혜리에서 봉화 청량산으로 가는 길이다.

■예던길 끊겨도 옛 정취는 그대로


퇴계는 13세 때 숙부인 이우를 따라 고향 집(온계종택)에서 청량산 기슭의 청량정사까지 낙동강변 50리 오솔길을 걸어 다녔다. 청량정사는 현재 청량사 사찰 내에 위치한 정자 겸 글방이다. 이우는 청량정사를 건립하고 조카인 이해와 이황, 사위인 조효연, 오언의 등을 가르쳤다. 그의 뒤를 이어 퇴계는 이곳을 수없이 오가며 성리학을 연구하고 김성일, 유성룡, 정구 등 많은 후학을 양성했다. 65세에 저술한 연시조 도산십이곡(陶山十二曲)도 이 길에서 탄생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안동시는 퇴계가 오가던 강변 오솔길을 정비해 ‘예던길’이라 이름 붙였다.

‘고인(古人)도 날 보고 나도 고인 뵈 / 고인을 뵈도 녀던 길 알패 잇나니 / 녀던 길 알패 잇거든 아니 녀고 엇덜고.’ 도산십이곡 중 아홉 번째 노래다. 현대어로 고쳐 쓰면 ‘옛 성현도 나를 보질 못했고 나도 옛 성현을 뵙지 못했네 / 고인을 뵙지 못했어도 그분들이 행하던 길이 내 앞에 있네 / 그 가던 길이 앞에 있으니 나 또한 아니 가고 어떻게 하겠는가?’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이 길은 풍광이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퇴계가 옛 성현의 말씀을 되새기고 진리를 탐구하던 사색의 길이었다. 이를테면 철학자의 길이다. 예던길은 ‘가다’의 예스런 표현인 ‘예다’에서 따왔다. 도산십이곡의 ‘녀던 길’이다.

예던길은 안동호 상류 단천교에서 시작한다. 강 왼편으로 물길을 거슬러 오르며 포장도로가 이어진다. 그러나 약 1.5km 지점에서 도로는 끝이 나고 탐방로는 건지산(557m) 등산로로 연결된다. 퇴계가 걸었던 강변을 버리고 산으로 오른다. 일부 구간이 사유지여서 우회로를 텄는데 물길에서 멀어지니 옛 정취도 그만큼 퇴색된다. 키 큰 미루나무 아래에 억새와 갈대가 일렁거리는 강변길을 눈으로만 봐야 하니 아쉬움이 크다.

대신 도로가 끝나는 곳에 전망대가 세워져 있다. 정면으로 보면 양편 가파른 산자락 사이에 낙동강이 푸른 물을 머금고 흐른다. 바로 아래에 흐르는 물소리가 겨울바람처럼 청량하다.

청량산은 최고봉인 장인봉을 비롯해 선학봉 축융봉 금탑봉 연적봉 등 12개의 고봉이 절경을 이뤄 일찍이 소금강으로 불렸다. 퇴계의 청량정사뿐만 아니라 통일신라시대 서예가 김생이 머물렀다는 김생굴, 원효대사의 전설이 깃든 원효정(井), 최치원이 수도한 풍형대, 고려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머무르며 쌓았다는 청량산성 등 수많은 유적을 품고 있다.

육중한 바위 군상이 기기묘묘하게 어우러진 청량산은 먼발치에서 봐도 멋스럽고 기품이 넘친다. 예던길 전망대에서 보면 우뚝 솟은 봉우리가 웅장하면서도 부드럽다. 가파르지만 모나지 않고, 높지만 위압적이지 않다. 황갈색 겨울 산과 시리도록 푸른 낙동강 물줄기가 선명하게 대조를 이룬다. 퇴계가 ‘그림’이라 표현했던 모습 그대로다. 겨울이 이럴진대 꽃피는 봄과 여름이며 단풍으로 물든 가을날의 풍경이 얼마나 곱고 화려할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예던길 상류 고산정과 농암종택


막히고 끊긴 예던길의 정취를 조금이나마 맛볼 수 있는 곳은 강 상류 농암종택과 고산정 부근이다. 예던길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면 단천교에서 농암종택까지 약 4km만 걸으면 되지만, 찻길로는 18km나 떨어져 있다. 퇴계가 태어난 곳, 태계태실(온계종택)이 있는 온혜리로 되돌아 나와 35번 국도로 봉화 쪽으로 올라가다 가송리로 빠지는 길로 에두르기 때문이다.

농암종택은 조선 중종 때의 문신 이현보(1467~1555)가 나고 자란 집으로, 영천 이씨 안동입향조이자 그의 고조부 이헌이 처음 지었다. 애초 도산서원 아래쪽에 위치하고 있었으나 안동댐 건설로 수몰될 것을 후손들이 농암을 기리기 위해 세운 분강서원과 함께 이곳으로 옮겼다. 낙동강이 휘감는 여울 안쪽에 위치해 주변에 학소대를 비롯해 한속담(寒粟潭), 벽력암(霹靂巖) 등의 수직단애가 절경을 빚고 있다. 고르고 골라 이렇게 풍광이 뛰어난 곳으로 이전했으니 후손의 혜안 또한 남다르다. 현재 고택민박을 운영하고 있다.

예던길 주변은 안동에서도 외진 산골이라 숙소와 식당이 많지 않다. 도산서원 인근 안동호반자연휴양림에 묵으면 예끼마을까지 호수 위로 이어진 ‘선성수상길’을 걸을 수 있다. 특히 해 질 녘 일몰 풍광이 일품이다. 수몰민들이 이주해 형성한 예끼마을에 식당이 다수 있다.

<안동=글 최흥수 기자>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