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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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창 백인경/버클리 문학 회원

2023-12-14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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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엉킨 실타래”

날카롭게 흝고 달아나는 겨울바람에 문풍지가 울고있다. 저녁밥을 짓고 난 아궁이에서 담아놓은 화로불이 아직도 기세가 좋다. 동구밖 멀리서 들려오는 개짖는 소리에, 화로불 위에 놓인 찌게 그릇을 연신 만져보시는 어머니는, 귀갓길이 늦으시는 아버지가 마음에 쓰이시나 보다. 따뜻한 아랫목에 발을 묻고 나도 어머니 만큼 아버지를 기다리고 있다. 항상 집에 오실땐 내가 좋아하는 박하사탕이나 과자등을 사다 주시기 때문이다.
손가락에 골무를 끼우신 어머니는 아까부터 화로불에 인두를 데우셔서 저고리를 손질하고 계신다. 꾸벅꾸벅 조는 내게 도란도란 해주시는 어머니의 옛날얘기에 나의 눈은 다시 초롱초롱 해진다. 졸음기가 싹 달아난 내게, 어머니는 나의 두손을 벌리게 하시고 실타래를 거신다. 실패로 감기는 실타래는 서서히 내손에서 작아지며 실패로 옮겨가다 나의 손장난에 길을 잃고 엉켜 버렸다. 한참을 엉킨 실타래를 푸시려고 하시다가 더욱 더 엉켜지는 실타래에, 어머니는 마침내 가위를 드신다. 아깝지만 엉킨부분을 과감하게 자르시고 다시 시작하신다. 싸락눈 내리는 소리에 겨울밤이 졸고있다. 어릴적 고향마을 어느 겨울에.
얼마전 내마음이 엉켰다. 어디서부터 였는지 모른다. 한생각 삐끗하게 잘못 꼬인 마음은 나를 힘들게 했다. 힘들게 하는 이유를, 알량한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엉큼한 이기심을 만족 시키기 위해, 밖에서 그 원인을 찿으려고 애를 쓴다. 한번 잘못 들어선 마음의 방향은 고집스럽게 밖으로만 향해서 헤맨다. 마침내 쓸데없는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고 덧대어져 엉켜버린 실타래 마냥 실마리를 풀수없게 되었다. 신경이 예민해지고 따라서 몸도 경직되어, 잠자다 눈을 뜨면 얼킨 마음의 기습에 잠을 설치기도 한다. 마음을 풀어 보려고 하면 할수록, 마치 검불더미를 잔뜩지고 조그만 구멍으로 나갈려는 것마냥, 어리석게 헛 힘만 쓰게되어 점점 지쳐간다. 엉킨 실타래는 가위로 자를수 있지만 볼수도 만질수도 없는 형체가 없는 꽉막힌 마음은 속시원하게 잘라낼수가 없다.
마음의 평화를 다시 찾아 살기위해서, 어리석게도 마음 고생을 엄청나게 한 다음에야, 밖으로는 답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밖으로 향했던 마음을 안으로 돌린다. 딱하게 엉킨 내마음을 그대로 꼬옥 안고서 다독인다. 넘어진 그자리에 주저앉아서 내마음을 정직하게 그대로 받아들인다. 못난마음, 부족한 마음, 헐떡이는 마음등을. 인정하고 싶지않은 밀어내고 싶은 마음들이지만, 내 스스로 일으킨 마음들이다.
넘어져서 마음속으로 울고싶을 만큼 울고난 다음, 내 있는 그대로의 마음을 받아들이고 난후, 엉켰던 마음으로 꽉 찼던 마음에, 조금씩 빛이 든다. 서서히 형체도 없던 엉킨 마음 자리에 따스함이 자리잡아 가고 있다. 얼었던 마음이 녹아가고 경직 되었던 몸이 풀어지기 시작한다. 머리가 시원해져 꿀잠을 잔다.
마음안에서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밖의 상황은 변한것 없이 그대로인데. 내마음의 미로의 시작은, 뭔가에 걸려 넘어졌을때, 나를 돌아보지 못하고 그 원인을 밖으로 돌렸던 나의 옹졸한 마음이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난 아무도 모르게 돈키호테가 되어 허공에 대고 미친듯이 삿대질을 해댔던 것이다. 뒤늦게라도 깨달아 찿은 마음의 평화는 내마음이 나에게 준 소중한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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