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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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창 백인경/버클리 문학 회원

2023-12-07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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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0년 곰삭은 맛”

모닝커피 뽑아놓고 새벽 신문을 갖으러 앞뜰로 나왔다. 쌀쌀하지만 가슴까지 맑아지는 듯한 초겨울의 새벽공기가 신선하다. 뜰이 촉촉하게 젖어있다. 간밤에 소리없이 비가 내렸나 보다. 신문을 보며 쇼팽의 빗방울 전주곡을 듣는다. 잔잔한 내마음에 빗방울이 떨어진다.
난 유난히 비를 좋아한다. 나와같이 비를 엄청 좋아하는 친구가 있다. 이친구를 알기 시작한지도 어언 40년이 넘었다. 이민 초기에 가까이에 살면서 만난 친구다. 서로 나이도 거의 같고 애들도 고만고만 같은 또래들 이었다. 서로 이웃하며 애들도 같이 놀고 우린 서로의 마음을 주고 받으며 정을 나누었다. 서로 혈혈단신, 오직 우리가 일군 가족만이 전부라 더욱 가깝게 지냈다. 척박한 땅에 정착할려고 정말 열심히 일을 했고, 아끼고 아끼며 아이들을 키웠다. 그친구나 나나 생활의 철학이 비슷했다. 넉넉치 않았던 그시절엔 자신들에 대해서는 돈을 쓰지 않았고, 오직 가족과 아이들에게 온마음을 쏟으며 살았다. 번듯한 미장원도 가지않고 저렴한 수펴컷에서 머리 손질을 했고, 맥도날드에서 밍밍한 커피를, 그것도 나누어 마시며 우린 행복해 했다. 지금도 그친구는 나의 수퍼컷 헤어스타일 사진을 보여주며, 너무 우스꽝스러운 모습에 서로 낄낄거린다. 그사진엔 상고머리 스타일의 내가, 우리 아이들을 안고 마치 선머스마 같이 서서 얼굴이 터져라 웃고있다.
우린 자주 만났다. 서로의 아픔을 나누며 같이 아파했고, 슬픔을 나누며 같이 울었다. 아이들이 무탈하게 잘 자라는 것을 보며 행복해 했고, 서로의 기쁨에 내일마냥 기뻐했다. 힘든일을 당할때는 서로의 어깨에 기대게 했고, 억울한 일이나 열나게 하는 일을 당할때는 서로 자신의 일인냥 화를 내주고 마음을 달래줬다.
이제 어언 40여년의 세월이 지나, 이민 2세들인 서로의 아이들이 결혼을 하고, 또 이민 3세들이 되는 그들의 아이들이 태어나, 아름답게 잘 자라주고 있다. 그야말로 인생의 황금기인 성숙기로 접어 들었다. 서로 늘어나는 주름들을, 흰머리들을 인생의 훈장인듯 바라보며 쏜살같이 흐른 세월의 강물앞에서 망연자실 실소를 한다. 그 인고의 시간들을 견디고 열심히 살아낸 아름다운 모습이다. 가까이에서 건강하게 살아주는 친구가 고맙다.
이리 오랜동안 서로의 아픔과 슬픔을 같이 나누며 많은 시간속에 켜켜이 쌓인 추억으로 곰삭은 우정은 무엇으로도 대체 할수 없는 보물같이 소중한 것이다. 순수하고 어려울때 만나 오랜세월 같이 걸어온 편하게 마음을 나눌수 있는 친구이기에, 나이가 들수록 더욱 더 소중해 지는것 같다.
오랜세월을 알았다고 다 친구이겠는가. 친구는 서로를 바라보며 서로의 마음이 느껴지고, 말을 하면 메아리같이 마음속으로부터 진실된 울림이 느껴져야 하리라. 살아가면서 우린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헤어진다. 주위에 아는 많은이들은 가깝게 혹은 멀게 알고 지내는 지인일것이다. 하지만 주위에 많은 지인들도 같은 세상을 같이 걸어가며 주고 받는 소중한 분들이다. 허나 그 많은이들 중에 한두명은 진실된 마음이 울리는 친구가 있다는 것은 인생의 축복이다.더불어, 만나지 오래되지 않은 친구들도 앞으로 40여년의 세월을 같이 걸어가며 곰삭기를 바래본다. 앞으로 40년 후에 또 이같은 글을 다시 쓰기를 기대하며 당찬 욕심을 부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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