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일이다. 분명 평소에는 착하고 나무랄 데 없는 아이였는데, 여행을 하며 아이는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아이는 수시로 징징대거나 토라지거나, 과하게 흥분했다. 7살 첫째 아들은 반복된 일상이 결여된 무한한 자유가 주어진 여행지에서 또다른 자아를 내보였다. 여행에서 보여진 아이의 새로운 자아는 어딘가 불안하고, 불완전하며, 통제 불가능한 상태로 보였다. 아! 이 아이는 반복되고 규칙적인 일상에서 오롯이 안정감을 느끼는구나, 새삼 깨닫고 만다.
반복되는 생활, 이른바 ‘루틴’(routine)에 대한 갈망은 비단 아이에게만 있던 건 아니었다. 나 또한 여행에서 돌아와 본래의 삶의 궤도로 안착하자 편안한 감정을 느꼈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일을 하고, 운동을 가고, 살림을 하는 다람쥐 쳇바퀴 돌듯 반복되는 일상에서 ‘쉬고 있다’는 묘한 차분함을 누릴 수 있었다. 분명 여행지에서 보다 더 빡빡한 일과인데도, 마치 휴식을 하듯 긴장감이 없는 상태였다.
별다를 것 없는 일상에서 아이와 내가 모두 편안함을 느끼는 건 루틴 덕분이다. 루틴은 반복적으로 이루어진 활동이나 일정한 행동의 순서이다. 루틴은 뇌에게 에너지 낭비를 피할 수 있게끔 도와주면서 생산성을 최대치로 끌어올릴 수 있게 만드는 하나의 방법이다. 자신의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들 중 매일 일정 루틴을 가지고 생활하는 사람이 실제로 많다. 특정한 일상 활동들이 규칙적으로 반복되면 루틴이 되고, 루틴이 반복되면 자동적인 습관으로까지 이어진다.
반복 행동을 통해 만들어진 습관은 무의식적인 행동이기 때문에 한 번 제대로 자리잡기만 하면 별도의 의지없이 지속할 수 있다. 습관에 있어서 만큼은 강도보다 빈도가 중요한데, 특정 행동을 반복하면 뇌의 기저핵에 이 행동과 관련한 신경 회로가 활성화돼 습관이 된다.
2010년 ‘유럽 사회심리학 저널’(European Journal of Social Psychology, EJSP)에 발표된 습관 관련한 유명 실험이 하나 있다. 런던대학교의 제인 워들(Jane Wardle) 교수 연구팀은 96명의 참가자들에게 ‘점심 식사와 함께 과일 먹기’, ‘점심 식사할 때 물 한 병 마시기’, ‘저녁 식사 하기 전 15분 달리기’, ‘명상’ 등 평소 하지 않던 건강한 생활 행동을 하나 골라 84일 동안 반복하도록 요청했다. 참가자들은 해당 행동을 할 때 의지를 가지고 한 것인지 또는 자동적으로 행동한 것인지에 대한 자가측정 결과보고서를 작성했다. 실험 결과 습관이 형성되는 데까지는 사람에 따라 18일부터 254일까지 다양한 개인차가 발생했지만, 평균적으로 어떤 행동이 자동화되는 데는 66일이 소요됐다.
게다가 당연한 결과이긴 하지만 운동을 선택한 참가자 보다 먹는 행동을 선택한 참가자가 더 빠르게 해당 행동을 생활에 자동화할 수 있었다. 운동처럼 비교적 의지력이 요구되고 귀찮은 행동 보다는 큰 노력이 들어가지 않는 행동이 습관으로 만들기 쉬웠다. 때문에 심리학자들은 새로운 행동을 습관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아주 작은 일부터 시작하는 게 좋다고 조언한다.
미국의 유명 자기계발 코치인 제프 헤이든은 저서 ‘스몰빅: 작은 성공을 반복하라’에서 어떤 행동을 끝까지 지속하게 만드는 원동력은 동기나 의욕이 아니라 ‘작은 성공’의 경험이라고 주장했다. 예를 들어 산 정상까지 오르겠다는 큰 목표를 세워 두고, 산 정상을 바라보며 등산을 시작하기도 전에 미리 지쳐버리는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이때 저자는 오히려 10분만 올라가자, 20분만 더 올라가자 등의 단기 목표를 세우고 산 정상은 생각도 하지 말라고 했다. 즉, 최종 목표를 잠시 잊고 작은 성공에 집중하는 게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는 가능성을 높여준다는 것이다.
2024년 새해를 불과 25일 남겨두고 우리에게는 저마다의 새해 목표가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다. 하지만 과거의 경험을 통해 작심삼일을 반복하는 건 아닐까 불안감도 따라온다. 다가올 새해에는 그동안의 일상에 ‘새로고침’ 버튼을 눌러 일상의 소소한 부분부터 바꿔 나가 보자. 반복 행동은 루틴이 되고, 루틴은 이내 습관이 된다. 우리는 반복을 통해 행복을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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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인희 사회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