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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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창 박선주/ Clap4u CEO

2023-12-04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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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래떡과 조청

매일 먹다 남은 밥은 식은밥이 되어 냉장고 안에서 여기저기 굴러다닌다. 데워 먹으면 맛이 없고 버리기는 아깝고, 그래서 식은밥이 한데 모이면 시간을 내어 조청을 만든다.
밥으로 조청을 만든다고 하면 대부분 깜짝 놀란다. 바쁜 일정 가운데 조청을 만든다는 것에 놀라고 밥이 조청이 된다는 것에 더 놀란다.
식은밥에 엿기름이 더해지면 맛있는 식혜가 되고 그 식혜를 계속 졸이면 밥의 형태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달짝지근한 조청이 된다. 특히 프라이팬에 살짝 구운 가래떡에 조청을 찍어 먹으면 그 달콤함은 뭐라 표현할 수 없는 행복함까지 준다.

이 조청을 먹을 때마다 떠오르는 한 분이 계신다. 시애틀에서 캘리포니아까지 큰 트럭에 과일을 싣고 다니며 사업을 하시던 분이셨다. 너무 고단한 일정을 알았기에 우리 집에 들러 주무시고 가시도록 권유했고, 오셨을 때 맛있는 저녁을 대접한 후 후식으로 가래떡과 조청을 내어 드렸다.

가래떡에 조청을 찍어 드시는 모습이 너무 익숙해 보였다. 조청을 자주 드셔 보셨나? 라고 생각하던 그때,
그분의 눈시울이 갑자기 붉어지면서 눈물이 고이더니 금새 소리 없이 흐르고 있었다. 깊은 곳에 있던 아픔과 그리움을 누르며 크게 울지도 못하시고 울먹이셨다.
‘제가 어릴 적 할머니가 해 주시던 그 맛이에요. 그 이후에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한 이 조청을 여기서 맛보네요…'
눈물을 닦으며 어릴 적 할머니와 함께 살던 이야기를 슬며시 꺼내셨다.


엄마 아빠와 함께 할 수 없어 할머니 손에서 자라야 했던 그 어린 시절에 먹었던 유일한 간식이 가래떡과 조청이었다. 할머니가 그리워 할머니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나는 그분의 사연을 다 헤아릴 수 없었지만, 그 옛날 하루 종일 뜨거운 불 옆에서 조청을 만드셨을 할머니의 모습이 그려지며, 슴슴한 가래떡에 달짝지근한 조청을 함께 내어주신 할머니의 마음이 잔잔히 느껴졌다.

어릴 적 외롭고 힘든 과정을 보내야 했던 그 시간 속에 그나마 가래떡에 조청을 찍어 먹으며 그 어린아이는 달콤함이 무엇인지 알아가지 않았을까? 그 달콤함 때문에 잠깐이지만 행복이라는 것을 조금이라도 맛보지 않았을까? 싶다.

가끔은 내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지고, 여기저기 굴러다니는 식은밥 같아 힘든 환경에 나를 놓아버리고 싶을 때가 많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어릴 적 할머니의 조청을 맛보았던 그분의 모습에서는 더 이상 식은밥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슴슴한 삶에 조청처럼 진한 행복을 주는 삶을 살기 위해 무던히도 애쓰며 살아가고 계셨다.

아마도 그분의 삶 속에는 할머니의 사랑이 담긴 조청의 단맛이 인생을 달콤한 행복으로 바꿀 수 있는 힘이 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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