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밥 안에 있는 많은 재료는 각자의 맛이 그대로 나타나기를 원한다. 오이는 상큼함을 고집하며 어딘가에도 절여지지 않으려 하고, 당근은 딱딱함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 굵게 썰어져 한자리를 차지하고, 유일한 단맛을 내는 단무지는 무언가에 절여져 김밥 안의 단맛을 당당하게 책임지고 있다.
이렇게 모여 결국엔 김밥이라는 이름으로 접시에 올려지지만, 각자의 취향에 따라 하나씩 꺼내 버려지는 김밥의 재료들, 더군다나 내가 단무지를 먹지 못하게 되면서 나는 각 재료의 맛과 식감은 살리면서 서로 어우러지는 맛있는 김밥을 만들 수 있을까를 고민하며 김밥 안의 재료들을 하나하나 바꿔 보았다.
오이는 길게 잘라 햇볕에 바싹 말린 후 소금과 설탕에 절여 향이 그리 강하지 않으면서 쫄깃한 식감을 살리고, 당근은 딱딱한 식감을 없애기 위해 가늘게 썬 후 소금에 절여 색깔은 살리면서 마늘과 함께 살짝 볶아 당근의 단맛을 한껏 올리고, 가느다란 무는 잘 어우러진 피클 물에 비트와 함께 맛이 배도록 한 달 동안 담가 노란 단무지가 아닌 빨간 단무지로 완전한 변신을 시켰다.
절여지고 숙성되는 모든 과정에는 약간의 시간이 필요하고 조금의 불편함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렇게 만든 김밥은 그 어떤 것도 접시에 남아 버려지는 것 하나 없이 모든 재료가 한데 어우러져 먹을 때마다 감탄하며 기분 좋게 먹게 되는 맛있고 특별한 김밥이 된다.
내가 만들어 가는 인생이란 김밥 안에는, 각양각색의 모양과 맛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모여 ‘공동체’란 김과 밥 안에 둘러싸여 함께 살아간다.
개성이 강한 독특함이 때로는 모든 이들에게 상큼함으로 다가올 때도 있다. 마치 오이처럼…
또 어떤 이들은 당근처럼 단단하고 정확해 사람들의 중심 역할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때론 어느 모임에서나 단무지 같은 단맛으로 행복한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분들은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그런데 한 번쯤 생각해 보고 싶다. 함께 만들어 가는 공동체 안에 속할 때 나의 모습은 달라야 하지 않을까?
강한 독특함은 햇볕에 말려 향은 사라지지만 쫄깃하면서 오랫동안 사람들이 찾는 맛이 되고, 나만의 단단한 고집은 소금에 절여 부드럽지만, 색깔은 그대로 남기고, 늘 기쁨만을 즐기던 단맛은 시간과 정성 안에 푹 담겨 기쁨을 누리는 성숙한 단맛으로 바뀌는 과정을 갖는다면…
그래서 김과 밥에 쌓여 하나의 맛을 내는 김밥이 된다면, 얼마나 맛있는 가정이 되고 공동체가 될까?
여기저기서 맛있다는 감탄의 소리로 웃음 지어질 세상을 상상하니 입에 침이 고인다. 정말 맛난 세상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