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 최중애/회사원

2023-11-24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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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우 조연상

배우의 인물이나 맵시는 애초에 없었고 억지로 끌어붙인다면 한때 몸무게만. 그리고 하나 더 억지를 부리자면 양귀비보다 예뻤던 전설같은 과거도 있다. 딸바보 우리 아버지의 고슴도치 사랑에 우리 5 자매 모두. 그런데 뜬금 없이 여우조연상을 꿈꾸다니?! 영화에 나올 뻔 했던 적이 있긴하다. “영화 찍으러 왔으면 저 버스에 타세요.” “영화에 나올만한 미모이긴 하지만 교회 셔틀버스 운전하는 중이에요.” 새벽기도회에 Presidio 주차장에 교인을 픽업하러 가는데 영화 관계자가 조연 배우들을 위한 버스로 안내한다. 후에 그 영화 The Pursuit of Happiness를 보면서 웃음을 참지 못했으니, 그 버스에 타는 사람들은 노숙자, 집시 역, 그러면 그렇지.

공주가 왕자님을 만나 호텔에서 산다고 하면 모두 부러워했지만 그 이유를 몰랐다. 엄마가 해주시던 것을 직원이 해주는 것이니 고마울 것도 없었다. 왕자님(별명이 황태자) 덕에 비즈니스 클래스를 탔다. 그 때는 공주니 당연히 주인공이었다. 그러다 IMF 고래싸움에 새우등이 터진 왕자는 한국으로 망명을 했다. 집 사고 일년 반, 차 사고 열 달, 어쩔 수 없는 신데렐라 역변신. 직장을 다니면서 퇴근 후, 주말 여기 저기 일을 한 덕에 현상유지할 수 있으니 견딜만 했다.

비즈니스 좌석이 열심히 일하고 인정받은 본인의 능력이려니 했고, 일등석을 탄 적도 있으니 잘 나가는 직장인으로 여전히 여우주연상을 꿈꾸었을 듯. 훗날 그 나이에 공주 아닌 사람 없다는 주제파악과 모두 나만큼 열심히 일했고 비즈니스 좌석은 회사와(할인 받는 업종) 상사의 배려였다는 상황파악을 할 수 있어 다행이다.


악역을 맡은 배우들이 길에서 등짝을 맞곤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등짝 맞을 일인가 싶지만, 그 만큼 연기를 잘 했다는 얘기일터. 인생이 무대라면 그 무대에서 무단 이탈하고 싶은 여러 사건과 순간들로 생기발랄, 의기양양, 자신만만, 열정적이던 주연의 품위는 간데 없어지고 생존본능만 남은 무수리가 되어갔다. 고달플 때마다 인생이라는 무대에서 내게 맡겨진 배역이려니 했다. 직장에서 교회에서 나름 배역이 주어졌으니 있는 듯 없는 듯 분수에 맞는 조연도 감지덕지, 감사하며 살아가자 했다.

그러나 사각지대가 있으니 이건 배역이 아니라 실전이다. 돌싱에 상팔자 영락없는 “나라 잃은 공주”에게 가장 가까운 관계인 형제들 속에서 원석의 내 모습이 나오기 시작했다. 분장과 배역을 벗어버리고 완전 무장해제된 자연산의 내모습이 나 자신도 생소하고 겁이 나는데 받아주고 참아주는 형제들은 얼마나 힘든 일일지. 여우 조연상이 탐나지만 가능하지 않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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