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 백인경/버클리 문학 회원

2023-11-23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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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쉼터

나의 방엔 남쪽으로 난 커다란 창문이 있다. 거의 벽 전체가 창문이다. 집의 지형이 앞집들보다 조금 높아서 창의 커튼을 걷으면 커다란 창으로 온 하늘이 다 들어오는듯 했다. 이른 새벽이면 어슴프레 밝아오는 아름다운 하늘을 배경으로 커피향 음미하며 상쾌하게 출근 준비를 했고, 퇴근후에 온하늘을 붉게 물들이는 황홀한 석양을 보며 마시는 한잔의 와인은 하루의 피로를 말끔히 날려줬다. 비오는날 밤이면 커튼을 젖히고 유리창을 두드리는 빗소리를 들으며 세상 부러울것 없는 행복감을 느꼈다. 운치있고 아늑한 나의 쉼터였다.
아, 그런데 이런 은밀하고 소박한 나의 호사 생활에 마가 끼어 들었다. 내방 창문 건너편에, 두어 불럭 건너에 대학교가 있다. 이 대학교에서, 나의 창문으로 마주 보이는 오래된 건물을 허물고, 새 건물을 짓기 시작했다. 원래 있던 건물은 단층짜리 건물이었고 그나마 커다란 나무들로 가려있어 하늘하고 조화를 이뤄 더 아름다웠었다. 일년넘게 공사가 진행되는 동안 새건물이 얼마나 높이 올라갈까 마음 졸이며 지켜봤다. 1층, 2층, 계속 오르더니 어느새 4,5층은 족히 되어 보이는 건물이 우뚝 서버렸다. 내눈엔 마치 괴물처럼 보였다. 나의 창을 통해선 이제 그건물의 꼭대기를 간신히 비켜간 조그만 하늘만이 간신히 보였다. 나의 아름다웠던 view를 속수무책으로 빼앗겨 버렸다. 나의 소박한 행복을 앗아 가다니! 얼마나 속상했는지 울고 싶었다. 고심끝에 창가에 놓여있던 책상을, 창문하고 약간 대각선으로 각이진 방안쪽으로 옮겨, 주로 책상에 앉아 창밖을 본다. 불행중 다행으로 방안 책상에서 대각선으로 보이는 view는, 창 전체 크기는 아니지만 사철푸른 오래된 키큰 나무들이 얼기 설기 하늘로 솟아 있어, 마음만 바꾸면 한적한 휴양지에 온듯도 싶었다. 그런데로 다행이다 싶다.
나의 카페에서 15분쯤 걸어가면 샌프란시스코의 오션비치가 나온다. 운동삼아 시간 날때마다 걷는 나의 산책코스다. 특히 안개가 없는 날의 석양은 가슴 떨리게 아름답다. 전생에 나라를 구하기라도 한건지, 물좋고 공기좋은 이런 아름다운 생활환경에서 살수있다니! 무한한 기쁨과 감사가 늘 가슴에 가득하다. 이아름다운 자연환경 속의 나의 쉼터에서 몸과 마음을 쉴수있어 지치지 않을수 있는것 같다.
오래전 처음 이곳에 카페를 시작하면서 콘크리트 바닥만 있던 가든에 조그만 묘목들을 심었었다. 워낙 꽃들과 나무들을 좋아해서 이기도 했지만, 손님들을 위해 하늘이 보이는 공간에 꽃과 나무로 둘러쌓인 아늑한 자연적인 쉼터를 만들고 싶어서 였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누구나 편하게 와서 비교적 저렴한 가격의 음식을 먹고 커피한잔 하면서 혼자 혹은 사랑하는 지인들과 담소하며 지친 마음들을 쉴수있는 공간이 되길 바랬다. 그런 바램이 이루어진듯, 오랜세월이 지난 지금, 꽃과 나무들이 우거진 가든은 많은 손님들의 사랑을 받는다.
빠르게 흐르는 강처럼 우리는 각종 스트레스와 긴장에 끊임없이 내몰린다. 그러기에 자신만의 쉼터를 적극적으로 찿아 갖는다면 많은 도움이 되리라 생각된다. 진정한 자아에 가까이 갈수 있는곳, 고독과 마주할수 있는곳, 간혹 삶에서 생긴 생채기들에 새살이 돋을 수 있는 곳이기에, 쉼터는 나의 보물같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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