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3년에서 1992년까지 10년 가까이 방송됐던 KBS 쇼코미디 프로그램인 ‘유머1번지’의 ‘남과 여’ 코너에서 개그맨 최양락이 철민 역으로 연기하면서 유행시킨 말이다. 최양락의 상대역으로 팽현숙이 출연해 코미디언 1호 부부 인연을 만들기도 해 화제를 뿌렸다. 가부장의 권위를 철저하게 내세우는 철민은 현숙이 한 마디라로 할라치면 “이제 내가 싫어졌니? 그럼 나 갈까?”라고 말하면서 남자의 자존심을 내세운다. 현숙이 마지 못해 붙잡으면 철민은 “있을 때 잘해”라고 하며 “나는 봉이야~~”를 외친다.
봉이라는 말뜻엔 2가지가 있다. 하나는 ‘호구’라는 부정적인 의미이고, 다른 하는 ‘봉황’으로 ‘하늘과 같은 높은 존재’라는 의미로 쓰인다. 물론 철민이 말한 봉은 후자이지만 시청자들에겐 여성을 하찮은 존재로 여기고 있는 철민의 처지를 호구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효과를 주면서 인기 유행어가 됐다.
요즘 소비자들은 하늘의 봉이 아닌 ‘어수룩해 이용해 먹기 좋은 사람’인 봉이 되고 있다. 인플레이션 지속으로 원가 부담이 커진 식음료업체들이 가격 인상 대신 제품 용량을 줄이는 이른바 ‘슈링크플레이션’(shrink+inflation)을 전략을 구사하고 있어 소비자들을 우롱하고 있다는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지난 12일 월스트릿저널(WSJ)은 미국에서 100년이 넘은 전통을 자랑하는 오레오에 들어가는 크림 양이 줄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기본 오레온 제품보다 크림 양이 많이 들었다는 더블 스터프 오레오 제품에 실제로는 크림이 적게 들었다는 것이다. 제품의 포장지 사진과 크림 양이 다르다고 불평하는 소비자들이 있는가 하면 일부 소비자들의 경우 오레오를 비틀어 적은 양의 크림을 보여주는 영상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리기도 했다.
제조사인 몬델리즈는 슈링크플레이션 의혹을 일축하고 있다. 면밀하게 모니터링하고 있지만 크림 비율과 관련된 심각한 불만은 없다는 것이다. 이 같은 주장에도 매년 100여개국에 약 400억개가 팔려 40억달러 규모의 시장을 형성하고 있는 오레오의 명성에 영향을 주지 않고 있다는 게 업체의 반박이다.
하지만 몬델리즈는 전적이 있다. 삼각뿔 톱니 모양의 유명 초콜릿바 토블론이 2016년 슈링크플레이션 논란을 불러일으킨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초콜릿 톱니 간격을 더 벌리면서 중량을 줄였다가 소비자들에게 들통나며 상당한 역풍을 맞았다.
슈링크플레이션 현상은 비단 오레오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지난해 유니레버는 도브 비누의 중량을 100g에서 90g으로 줄였고, 버거킹 치킨너겟도 10조각에서 8조각으로 줄였다. 게토레이는 페트병 모양을 일자에서 가운데를 푹 들어가게 변경하는 방식으로 용량을 32온스에서 28온스로 14%나 줄여 조롱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한국에서도 슈링크플레이션 꼼수가 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8일 연합뉴스는 풀무원 ‘탱글뽀득 핫도그’가 평소 5개에서 1개가 빠진 4개로 용량을 줄였다는 보도를 내놓으면서 슈링크플레이션을 재소환해냈다. 동원F&B는 올해 양반김 중량을 5g에서 4.5g으로 줄였고 참치 통조림 용량도 100g에서 90g으로 낮췄다. CJ제일제당은 숯불향 바베규바 중량을 280g에서 230g으로 줄였다. 오비맥주도 지난 4월 카스 맥주 묶음 제품을 1캔당 기존 375ml에서 370ml로 줄여 주당들의 불만을 샀다.
기업들의 입장에선 각종 원가 상승으로 생산비가 늘어난 상황에서 제품 용량을 줄여 실제 가격 인상 효과를 노리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소비자들이 용량이 줄어든 것을 감지해 내기란 쉽지 않아 ‘눈 뜨고 당한다’는 볼멘 소리가 나온다. 더욱이 슈링크플레이션은 물가 상승 수치에 직접 반영되지 않지만 소비자가 느끼는 체감 물가를 끌어 올리는 주범이기도 하다.
고물가가 1년 넘게 지속되면서 생활비 부담으로 힘겨운 소비자들이 슈링크플레이션을 대하는 마음은 답답하다. 그래서 이렇게 외친다. “있을 때 잘해, 나는 봉(황)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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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상욱 경제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