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 박선주/ Clap4u CEO

2023-11-20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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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밥 (1)

김밥 안에 들어가는 재료들은 다양하다. 하지만 각 재료의 이름은 사라지고, 그냥 김밥이란 이름으로 불린다. 김밥을 먹다 보면 오이의 향이 싫어 오이를 쏙쏙 빼고 먹는 사람들, 당근의 딱딱함이 싫어 당근을 빼고 먹는 사람들, 각자만의 이유로 남겨진 재료들은 한쪽 귀퉁이에 남는다.
그나마 김밥 안에 절대로 빠질 수 없는 재료인 단무지는 모든 이들에게 선택되어 어떤 김밥에도 빠지지 않고 들어가 단무지가 없는 김밥은 마치 김밥이 아닌 것처럼 보일 때도 있다.

아주 오래전 정성껏 김밥을 싸서 어린아이들과 함께 김밥을 먹는데, 역시나 어떤 아이는 오이를 빼고, 어떤 아이는 당근을 빼고 먹었다. 그런데 그중 한 아이의 접시에는 단무지가 덩그러니 남겨져 있었다. 다른 채소를 빼고 먹는 것은 대충 이해가 가지만, 단무지를 빼고 먹는 것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내가 좋아한다는 이유와 단무지가 없는 김밥은 김밥이 아니라는 나만의 논리로 그 아이에게만 물었다. 왜 단무지를 빼고 먹냐는 물음에 그 아이의 대답은 단순했다. “단무지의 맛이 이상해서요….”
이 맛있는 단무지가 왜 이상할까? 참 이해할 수가 없다는 표정과 눈빛으로 그 아이에게 말했던 기억이 난다.

그 이후 10년이 지났을까? 어느 날 김밥을 먹는데 그동안 느껴보지 못했던 단무지의 맛이 갑자기 나의 혀끝에 잡혔다고 해야 할까? 억지스러운 단맛 때문에 김밥 전체가 맛없어지면서, 나도 모르게 김밥 안의 단무지를 젓가락으로 빼고 있었다. 마치 그때 그 아이처럼…


나는 씹던 김밥을 입안에 둔 채 한참을 삼킬 수가 없었다. 아! 그 아이가 싫어했던 단무지 맛이 이 맛이었구나!

단무지를 싫어하는 게 이상하다고 생각했던 오만함과, 어른이라는 이유로 ‘이해’라는 단어를 함부로 사용했던 무지함 등등 그리 좋지 않은 단어들이 줄줄이 나열되며 얼마나 미안하던지…

접시에 덩그러니 남아있는 단무지처럼 누군가의 마음 한 귀퉁이에 안 좋은 기억으로 남겨져 있을 나의 말들을 주워 담고 싶은 심정이었다.

오늘도 나는 가정과 직장 안에서 서로 다른 모양과 색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살아간다. 그 안에서 내가 경험하고 알고 있는 것이 기준이 되어 마치 내가 너그러운 사람인 것처럼 이해한다고 말하고, 때로는 나와 조금이라도 다른 이들에게 ‘이해할 수 없다.'라고 단정 지으며 살아갈 때도 참 많았던 것 같다.

혹시 내가 속해 있는 공동체 안에 덩그러니 맛없는 존재로 남겨지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아니면 나의 색깔은 선명하지만, 전체의 맛을 하나로 어우르는 맛있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내가 만들어 가는 인생이란 김밥 안을 조심히 들여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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