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에 없던 두 번째 집을 구매했다. 남편이 어느 날 빅베어에 나온 집을 보러 가더니 덜컥 계약을 해버린 것이다. 대출 이자율도 비싼 이 시기에 집을 사겠다니 기가 막힌다. 한번 마음먹으면 무조건 해야 하는 남편을 제대로 말리지 못한 채 론 서류에 사인을 해주었다. 빨리 진행시켜야 한다고 닦달을 해대는 바람에 서류를 제대로 읽어 보지도 못했다.
집 구경도 못하고 사인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에스크로가 끝나기 전에 가서 봐야 할 것 같아서 애 둘을 데리고 빅베어로 향했다. 내가 사는 곳에서 두 시간이 넘게 내달려야 하는 빅베어 레이크는 인구수 6,148명의 작은 관광도시이다. 이 산속 작은 도시에 스키장과 골프장 그리고 아름다운 호수가 자리하고 있어 사계절 내내 사람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일 년 내내 푸르기만 한 팜트리만 주야장천 보다가 뾰족한 잎을 두른 침엽수와 노란빛으로 물들어가는 나무들을 보니 가을이 왔음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꼬불꼬불 산길을 올라 어렵게 도착하니 곧 우리의 두 번째 집이 될 작고 아담한 산장이눈앞에 나타났다. 산장 입구에는 앞 나무에서 떨어진 귀여운 솔방울들이 우리를 마중 나와 있었다. 먼저 와있던 리얼터와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집안으로 조심스레 들어가 본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거실과 덱을 연결하는 확 트인 전면 유리창 너머로 푸르른 나무들이 눈에 들어온다. 가까이 다가가보니 확 트인 숲 전경이 우리를 반긴다. 이 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이다. 거실 식탁에서 이 풍경을 반찬 삼아 무엇을 먹어도 맛있을 것만 같다.
덱으로 나가보니 제법 널찍한 덱에서 바비큐 파티를 열면 좋을 듯싶다. 전주인의 손때가 묻은 아담한 부엌은 캐비닛이 아주 튼튼하고 수납공간도 제법 많아 보인다. 말끔히 닦고 정리하면 제 역할을 잘 해내지 싶다.
거실 한가운데 자리한 벽난로를 보며 아이들과 핫초코를 마시는 상상을 해본다. 상상만으로도 가슴 한편이 뜨끈해진다.
거실 복도에는 화장실 하나가 왼쪽에 있고 더 들어가면 작은 방 둘이 양 옆으로 나란히 붙어 있다. 복도 끝 오른쪽으로 향하니 작은 문 하나가 나온다. 문을 열면 아래층으로 내려갈 수 있는 계단이 있다. 아래층에는 아담한 공간과 작은 화장실 하나가 세탁장과 겸하여 있다. 남편은 아래층 공간은 게임룸으로 쓰고 싶다고 했다. 벌써 플레이스테이션 기기와 텔레비전을 구매해 놓고 신이 났다.
남편은 이 집을 스키 시즌에는 에어비앤비로 운영하고 비수기에는 우리 가족들이 주말에 올라가 놀고 쉬는 용도로 쓰길 원한다. 아이들이 이 자연 속에서 뛰놀며 크기를 바라는 마음이 크다. 멀고 험한 산길을 올라오며 투덜대기는 했지만 맑은 공기와 산에서만 즐길 수 있는 액티비티들을 하나씩 해보니 이 작은 산장에 정 붙이며 가끔 올라와 지낼 수 있을 것도 같다.
이미 물은 엎질러졌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하지 않았나. 빚은 늘었지만 이 집에서 쌓아갈 추억들로 마음의 곳간을 채워볼 작정이다.
이제 곧 겨울이니 이곳은 또 새하얀 옷으로 갈아입겠지. 태어나 한 번도 눈을 본 적이 없는 둘째 아이가 하얀 융단길을 그 작은 발로 성큼성큼 걸어 나갈 모습을 상상해본다. 뽀득뽀득 눈 밟는 소리와 아이들의 깔깔거리는 웃음소리가 귓가에 들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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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람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