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 최중애/회사원

2023-11-17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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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웃어! 웃어!

20여년 전 얘기다. 설교에 목사님이 우스운 얘기를 하시면 맨 앞에서 가장 크게 웃는 그 친구 때문에 교인들은 한 번 더 웃는다. 동시통역을 하는 자매에게 물어보았다. 어떻게 통역을 하길래 같이 웃게 만드느냐고. 그 비결이 궁금하기도 했고 꼭 전수받아야 할 이유가 있었으니 바로 그 친구다.

수요예배와 새벽기도에 나오는 한국말을 못알아듣는 유일한 성도. 주일예배에는 동시통역이 있지만, 새벽기도와 수요예배에는 그 한 사람만을 위해 동시통역을 할 수 없는 상황이라 안타까웠다. 오지랖 넓은 내가 생각해 낸 것이 노트북을 들고 그 사람옆에 앉아 목사님의 설교를 들으며 영어로 받아써주는 거였다.

설교를 들으며 타자를 치면 그는 모니터에서 설교를 읽고. 그런대로 할만 했는데 문제는 목사님이 우스운 얘기를 하실 때다. 한국말 우스개 소리를 영어로 써내려가야하는 상황. 그러니까 그를 웃기려면 참으로 긴 설명이 필요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나의 큰 고민은 원고없는 동시통역도 아니고 목사님 설교 속도도 아닌, 너무 궁금해하고 듣고 싶어하는 우스운 이야기를 그냥 넘어가야 하는 한계와 미안함이였다. 짧은 시간에 동시통역이 불가능하기도 하고 통역을 한들 그를 웃게 만들 만한 얘기가 아닐 경우가 대부분이니 어쩔 도리가 없었다. 큰 기대를 하고 주일설교 동시통역하는 자매에게 그 비결을 물었는데, 나도 그 친구처럼 박장대소 하고 말았으니, 비결은 “웃어! 웃어!” 원고가 있대도 그 부분은 어쩔 수 없었나보다.


심하게 다쳐 오른 팔 하나 밖에 쓸 수 없어 nursing home에 있을 때였다. 수술 후 열흘 동안 맞는 주사가 있다. 간호사가 아침마다 주사기를 들고 와서 깔깔깔 웃으며 “너 주사맞자”. 그 때는 몸도 너무 아프고 마음도 몸만큼 아파 멍하니 모든 감각이 정지된 때였다. 며칠 깔깔깔 웃으며 “주사 맞자” 하고, 주사를 놓으면서도 여전히 깔깔 웃는 그녀를 보고 나도 웃기 시작했다. 처음에 어이가 없어서 웃고, 깔깔 웃을 일이 없는 곳에서 그렇게 웃는 그녀가 신기해 웃고, 나중에는 그냥 같이 웃게되었다. 주사를 놓을 때만 아니라 가는 곳 마다, 하는 일 마다, 만나는 사람마다 그녀는 깔깔깔 웃음을 터트린다. 내가 만난 사람 중에 “항상 기뻐하라”를 가장 잘 실천하는 그녀의 깔깔 웃음은 모두를 향한 “웃어! 웃어!” 였다.

"항상 기뻐하라(Be joyful always)" 언제부턴가 "웃어! 웃어!"로 보이는 성경 구절이다.
여성의 창   최중애/회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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