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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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창 백인경/버클리 문학 회원

2023-11-16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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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oul Food”

어제 저녁부터 시나브로 내린비로 앞뜰에 힘겹게 벌어졌던 백장미가 활짝 봉오리를 폈다. 요즈음은 조금만 아끼지 않으면 어찌나 물값이 비싼지, 지난 여름동안 어쩌다 한번씩, 겨우 연명할 정도의 물만으로 버텨준 장미가 기특하다. 이제 곧 우기가 시작되니 마음이 편해진다. 집 안팎으로 있는 나무들을 보며, 마치 자식들이 음식을 맘껏 먹을수 있을것 같은 심정이기 떼문이다.
나의 어린시절은 50년대 말, 한국전 후여서 대다수의 많은 사람들이, 먹고 싶은것 맘껏 먹고 사는게 녹녹치가 않았었다. 우리집도 예외가 아니어서, 채소나 과일등 자급자족으로 생산되는것 이외의 기름진 음식들은 어쩌다 가끔씩 먹을수 있을 뿐이었다. 그래서 그어려웠던 시절에 먹던 음식들은 가슴 싸한 아련한 추억속의 그리운 음식들로 각인 되어있다. 사서 먹는 기름진 음식 대용으로 어머니께서 정성을 다해 끓여 주셨던 추어탕, 민물낚시를 즐기셨던 아버지 덕분에 자주 먹었던 붕어매운탕, 가을 햇살에 말린 무청 시래기 듬뿍 넣고 된장 풀어 끓인, 3번쯤은 우려 먹을수 있는 가성비 좋은 시래기 사골곰탕등. 이러한 애틋한 추억과 어려웠을때 나눴던 가족들의 사랑이 깃들었던 음식들은, 평생 우리에게 따뜻한 위안이 되어주고 지칠때 입맛을 살려 원기를 북돋아 준다. 요즘 흔히 말하는 soul food이 되어주는 음식들이다.
이곳 미국에서 Soul food의 원래 의미는, 남부 흑인들의 전통 요리법이 담긴 음식이라 한다. 즉 흑인들의 애환과 정체성, 그들의 문화와 역사가 깃든 음식을 일컫는다 한다. 미국 식민지 시대때 남부지역 농장에서, 노예로 강제노역을 해야했던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아프리카 전통요리법으로 이곳 미국에서 나는 재료를 결합해서 만들었던 음식이다. 심한 노동량을 감당해야 했기 때문에 대부분 닭, 생선등을 튀긴 고열량 음식들 이었다고 하며, 1960년대 때부터 soul food라는 말이 알려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어쩌면 이곳 미국인들에게는 우리가 쓰는 소울푸드라는 말은, 의미가 다른 콩글리쉬일수도 있겠으나 글자 그대로를 풀어보면 그 숨은 맥락은 통한다 할수 있겠다.
그런 의미에서, 내겐 미국에서 아이들을 낳고 기르며 오랜세월 이민생활을 하는동안 생긴 소울푸드들이 있다. 그중에 하나가 미국식 아침식사다. 이민초기에 끝도없이 펼쳐진 고속도로가 좋아, 기분이 꿀꿀 할때면 정해진 목적지도 없이 자동차 여행을 즐겨했다. 여행 도중에 한국의 시골마을 같은, 이름모를 조그만 마을의 식당에 들르기를 좋아했다. 어렴풋이 해뜰무렵, 소박한 미국식당, 투박하고 큰 접시에 금방 썰어 만든 해시브라운과 팬케익에, 촌스럽게 구워진 두툼한 베이컨이나 소세지, 그리고 무한 리필이 되는 맹한맛의 커피, 어느 식당의 식탁에나 한결같이 놓여있던 잼들. 특히 좋아했던 오렌지 마멀레이드 잼….
낯선곳에 새로이 뿌리를 내리며 겪어야 했던, 크고작은 애환들, 고국에 대한 그리움등이 서려있는 이민초기에 먹었던 음식들은, 어느새 아련한 향수가 느껴지는 나의 소울푸드가 되었다.
여성의 창   백인경/버클리 문학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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