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박자박 소웁탐방 - 강원 고성군 화암사숲길과 신선대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부분만 보고 전체를 파악하지 못하는 근시안적 행동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속담이다. 자연 감상법도 마찬가지다. 때로는 멀찍이 떨어져야 진면목이 보인다. 설악산 울산바위도 그렇다. 속초 노학동 도로변에 위치한 복합문화공간‘설악산책’ 2층 카페에 들어서면 서쪽으로 난 통창으로 설악산 능선과 울산바위가 병풍처럼 펼쳐진다. 이곳뿐만 아니다. 설악관광단지의 대형 리조트는 물론이고 새로 생긴 카페나 식당은 어김없이‘울산바위 뷰’를 자랑으로 내세운다.
■울산바위 보려고 금강산에 간다?
해발 873m 울산바위는 사방이 절벽으로 이루어진 바위 능선이다. 6개 봉우리에 둘레가 4㎞다. 압도적인 위용에 자연이 빚은 예술성까지 더해 어디서 보든 기암절벽의 극치를 자랑한다. 오죽하면 인제와 연결되는 미시령터널 입구의 쉼터 명칭이 ‘울산바위 촬영휴게소’일까.
설악산에 왜 울산바위일까? 세 가지 설이 전해진다. 거대한 울타리처럼 보여 그렇게 불렀다는 설, 울음 우는 산이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이 있다. 어쩌면 산 울음이 아니라 바라보는 이들에게 눈물이 맺히도록 가슴 벅찬 감동을 선사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세 번째 전설은 가장 흥미롭고 널리 알려진 내용이다. 조물주가 1만2,000봉 멋진 경관을 빚으려 전국의 잘생긴 바위를 금강산으로 불러들였다. 울산에 있던 큰 바위도 서둘러 길을 떠났지만 워낙 덩치가 크고 무거워 금강산을 코앞에 두고 잠시 쉬다가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미시령에서 숨을 돌리는 사이 금강산 경관이 모두 완성돼 들어앉을 자리가 없어졌다. 고향으로 돌아갈 체면이 없어진 울산바위가 그대로 설악산에 주저앉고 말았다는 얘기다.
일대를 모두 설악산으로 알고 있지만, 오래전에는 미시령을 기준으로 북측을 금강산 권역으로 분류했다. 속초와 고성도 바로 이 고갯길을 경계로 삼고 있다. 고성군 토성면 신선봉(1,212m)은 금강산 남쪽 끝자락에 해당한다. 신선봉 중턱 널찍한 바위 봉우리인 성인대(신선대)는 또 다른 방향에서 울산바위 절경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약 4.5km 화암사숲길을 따라 걸으면 닿을 수 있다.
화암사 제1주차장(3,000원)을 통과해 조금 더 오르면 2주차장이다. 그 사이에 위치한 일주문이 이곳의 정체성을 다시 한번 일깨운다. 설악산이 아닌 ‘금강산화암사’ 현판이 선명하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널찍한 포장도로를 따라 조금 걸으면 왼편에 화암사숲길 표지판과 수바위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빼어날 수(秀) 자를 앞세웠으니 한마디로 잘생긴 바위라는 뜻인데, 화암사의 상징이나 마찬가지다.
화암사는 신라 36대 혜공왕 때인 769년에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수바위는 사찰에서 보면 더욱 웅장하게 보인다. 윗면 커다란 웅덩이에 항상 물이 고여 있어 ‘수(水)바위’라 부르기도 하는데, 화암사 전설은 빼어난 생김새와 더불어 이 바위에 대한 고마움을 담고 있다.
화암사숲길은 수바위 안내판에서 시작된다. ‘숲길’이라는 푸근한 명칭과 달리 바로 오르막이다. 가파른 데다 노면도 고르지 않다. 수바위 아래서 한숨 돌리면 1.2km 남았다는 이정표가 보인다. 거리가 짧다고 무리하면 안 된다. 아주 가파르지 않지만 길은 꾸준히 오르막이다. 중턱 산등성이 쉼터에 다다르면 왼편으로 너른 들과 바다가 보인다.
한껏 기대하고 올랐는데 정작 울산바위는 보이지 않는다. 능선 탐방로에서 샛길이 하나 이어지는데 ‘경고’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정식 등산로가 아니니 출입을 자제해 달라는 내용이다. 돌풍이 불면 실족 사고 위험이 크니 특히 조심하라는 글귀도 보인다. 조심스럽게 좁은 통로로 몇 발짝을 내디디니 널찍한 바위 능선이 나타나고, 그 너머로 울산바위의 웅장한 자태가 손에 잡힐 듯 펼쳐진다. 기암괴석 아래로 흘러내린 산줄기가 허리춤에서 흘러내린 한복 주름처럼 넓고 깊고 우아하다. 흠잡을 데 없는 완벽한 자연이다.
산자락 아래서 왼편으로 눈을 돌리면 설악지구 관광단지와 속초 시내, 고성 토성면 들판과 푸른 바다가 파노라마로 이어진다. 지나온 수바위는 녹음의 바다에 섬처럼 떠 있다. 눈길 닿는 곳마다 장관이고 그림이다. 대개는 울산바위를 배경으로 인증사진을 찍느라 정신이 없지만, 너럭바위에 비스듬하게 누워 산과 바다와 들판과 하늘을 하염없이 응시하는 이들도 보인다.
하산은 왔던 길 대신 화암사 방향으로 잡았다. 절까지 약 2km로 오를 때보다 조금 에두르는 길이다. 그래도 경사가 만만치 않다. 절반은 걷기 편한 숲길이지만 절반은 가파른 내리막이다. 다행히 올라갈 때보다 그늘이 많고 어느 정도 내려오면 탐방로 좌우로 계곡 물소리가 시원하다. 화암사를 500m 남긴 지점부터는 청량한 계곡과 나란히 내려간다.
<
고성(강원)=글 최흥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