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 스테이시 김/노인복지센터 근무

2023-10-26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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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 만남의 축복에 감사하는 계절

가을이 이미 발걸음을 내어민 줄 알았는데 갑자기 80도 넘는 한낮의 날씨가 며칠 계속된다. 인디언썸머 인가 생각했는데, 지난 주에 이어 이번 주도 이틀 내지 사흘간 온도가 높은걸 보면 정말 글로벌 워밍이 맞는 모양이다. 다행스럽게도 낮 두서너 시간만 쨍하니 뜨겁고 아침 저녁은 선선한 걸 보면, 계절이 바뀐 것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햇살 자체로 따지면야 여름의 것과 비교할 수 없을만큼 깊고 찬란하다. 집앞 나뭇잎 색깔이 조금씩 변하고 길가의 낙엽도 제법 떨어지기 시작했다. 가을이다.

노년의 삶은 어우러져 함께 즐거움을 공유하며 살아야 건강한 마음과 육체를 지킬 수 있다. 사실 만남의 축복은 소중한 것이고, 그 소중함을 지속시키는 것은 내 책임이다. 여자에게 나이가 들면 필요한 것 세가지 중에 남편이 아닌 친구가 있다해서 웃었는데, 그야말로 속마음을 함께 열어놓고 대화할 수 있는 친구는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자산이다. 고등학교 동창 중, 졸업 후 우연히 길에서 만나 서로의 아픔을 만져주고 위로하며 지금까지 정을 쌓는 친구가 있다. 또 어렸을 적에 미국에서 공부했던 한 다른 친구는 두 부모가 대학교수였던 지적인 환경에서 자라나 선하고 배려있는 마음가짐으로 나를 편하게 한다. 종교적 신념으로 결혼 대신 영혼들을 어루만지고 양육하면서 삶을 누리는 멋진 친구가 있는 가 하면, 교사로 재직하면서 학생들에게 역사를 가르치되 지식만이 아닌 역사의식을 통해 그들 인생에 대한 답을 주고자 했던 친구도 있다.

미국에서의 삶을 공유한 친구들은 가정과 일을 양립하며 이민생활에 모범을 보인 멋진 여성들이다. 신앙에 기초한 자녀양육은 물론이고, 아이들의 재능을 키우기 위해 희생을 마다하지 않은 친구들. 나이들어서 공부하는 모습으로 자녀들에게 지속적인 도전을 주며 기도하는 엄마로서의 본을 보이는 친구도 있다. 거의 70이 되어가는 시점에도 물질적, 제도적 제약에 상관없이 공격적인 사업을 추진하면서 오지랍넓게 주변 사람들을 챙기는 멋진 언니도 있다. 이 뿐일까. 사실 세세히 열거하지 않을 뿐, 지금의 나를 있게한 더 많은 수의 지인들과 친구들의 사랑은 내 가슴속에 넘친다. 감사할 따름이다.

육체적으로 숨이 다하는 날을 코 앞에 둔 나이는 아직 아닐지라도 조금씩 삶을 정리하는 자세로 천천히 여유있게 주변 사람들을 향한 감사를 전하는 이 계절, 가을을 맞고싶다. 성숙한 모습으로 품격있는 노년의 삶이 되어지기를 소망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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