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는 최근 정부의 한 고위공직자가 자녀의 학교폭력 문제로 사퇴하는 일이 생겼다. 초등학교 3학년생 딸이 2학년 후배를 화장실로 데려가 피리와 주먹 등으로 얼굴이 피투성이 될 정도로 폭행을 가했다는 것이다. 전치 9주의 상해라고 하니 무슨 성인 조폭도 아니고 참으로 놀랍다.
자녀는 부모를 보고 큰다고 하는데, 이 미성년 가해자의 부모는 대체 어떤 사람들이기에 아이가 그 지경까지 되었을까. 더욱 문제는 이 사건에 대응하는 부모의 태도가 진정으로 자식의 잘못을 사과하는 모습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가해 학생 아버지인 대통령실 비서관의 부인이 윤석열 대통령과 남편이 함께 찍은 사진을 카톡 프로필 사진에 올려 처벌을 심의하는 교사들로 하여금 아이의 부모가 누구인지 알 수 있게 했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잘못된 행동을 하는 자식의 부모다운 행동이다.
용산 대통령실은 해당 비서관에 대한 공직기강 조사에 착수했다고 했지만 이 주인공은 언젠가는 또 다른 직책과 모습으로 공직사회에서 높은 신분으로 다시 돌아올 것이다.
이런 고위공직자 자식의 학폭 사건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불과 얼마 전에도 전국 경찰 수사를 지휘하는 국가수사본부장으로 임명됐던 정순신 변호사 또한 자식의 학폭 가해로 낙마한 고위 공직자 1호라는 불명예를 안았다.
한 유명 사립고교 학생이던 정씨의 아들은 동급생을 1년 가까이 괴롭혔다고 한다. 피해자에게 비인격적인 폭언을 하면서 평소 친구들에게는 고위직 검사였던 아버지를 자랑했다는 것. 아들이 학교폭력 문제로 강제전학 위기에 처했지만, 그의 부모는 ‘언어폭력은 맥락이 중요하다’고 항변하면서 반성보다는 상대를 탓하는 모습으로 일관했다고 한다.
어쩌면 한국에서는 자신을 돌아보며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는 모습을 더 이상 쉽게 볼 수 없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하면 자신이 더욱 초라해지고 사회적으로도 불이익만 당한다는 생각이 팽배한 때문일까? 한국의 교육부는 학교폭력 대책위원회를 열고 툭하면 대책을 발표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바뀔 것은 없을 것 같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속담의 의미를 우리 모두 잘 알기 때문이다.
서울대만 가면, 의사나 판검사만 되면 그 어떤 행동도 용서된다는 저급한 지성이 팽배하는 사회에서 태어나고 자라는 아이들에게 무슨 잘잘못을 따질 수 있을까. 약육강식이란 말은 약자는 강자의 먹이가 된다는 뜻이다. 강한 자가 약한 자를 괴롭히거나 죽이고, 폭력이 난무한 무질서한 사회가 우리가 떠나온 모국의 안타까운 모습이 되었다.
아버지를 잘 만난 것도 능력이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사회에서 공정과 상식이 통할 수 있을까. 피나는 노력이 인정받는 미국에 오래 살다보면 한국의 이런 현실이 너무나 믿기 힘들게 된다.
부모의 사회적인 위치에 의해 자녀의 부와 사회적 지위가 정해지는 나라가 이른바 북조선 김씨 일가 체제 아닌가. 능력주의는 출신과 배경에 상관없이 자신의 꾸준한 노력만으로 풍부한 미래를 보장해주는 미국같은 시스템이다. 집안의 수준에 따라 사회적 지위가 확정지어지는 그런 음습한 행태가 판치는 나라, 한국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뉴욕의 많은 한인들이 요즘 한국을 자주 방문하고 돌아오는데 과연 그들은 어떤 것을 보고 올까. 우리 1세대가 학교 다니던 시절에도 물론 학폭은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최소한의 낭만과 나름 도의는 있었다. 지금은 스마트폰만 소지한 채 가슴과 정신은 혼미한 기계인간들이 교실을 차지하고 있는 것 같다.
마음대로 안 되면 약한 상대만을 골라 폭행과 폭언을 일삼는 자들이 권력중심부에 있는 나라, 그런 나라, 그런 사회라면 잘 했다 잘못했다, 보수냐 진보냐 따지고 논하는 것 자체가 어쩌면 무의미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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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영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