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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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창 나효신/작곡가

2023-10-20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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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샌프란시스코 이야기(12)

나는 지난 달에 샌프란시스코의 식물원에서 매년 열리는 ‘플라워 피아노’(Flower Piano)에 다녀왔다. 아름다운 대규모 정원에 그랜드 피아노를 여러 대(올해에는 12대!) 가져다 하는 행사이다. 이 행사는 닷새 동안 계속되었다.

마치 내 집인 것처럼 자주 방문하는 샌프란시스코 식물원에 주중에 가면 유모차를 밀고 오는 젊은 엄마들, 그리고 나이가 많은 사람들을 자주 본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편안한 바지 차림이다. 그런데 플라워 피아노 행사에는 꽃무늬 드레스를 입은 사람들이 아주 많았다. 그리고 파란색 옷을 입은 사람들이 많았는데, 이 행사의 자원봉사자들이 입은 파란색 셔츠 덕분이기도 했다. 초록색 정원에 파란색 옷이 참 상쾌했다. 유모차 밀고 온 젊은 부부들, 친구들과 가족과 함께 온 사람들, 혼자 온 사람들... - 평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왔다. 샌프란시스코 시민은 무료로 입장하고, 시민이 아닌 사람들은 입장료를 지불한다.

피아노 12대를 이 넓은 정원에 드문드문 가져다 두었다. 이것이 행사이다! 진행은 시민들이 한다. 그 피아노 앞에 누구나 원하면 앉아서 피아노 연주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조금은 쑥스러운 표정으로 연주하는 청년, 조그만 소녀, 검정색 양복을 입은 꼬마신사, 피아노를 치는 사람들은 참으로 많았다. 사람들은 앉아서 서서 경청하고 박수를 쳤다. 나는 아름다운 정원에서 잔디밭에 모여 앉아 음악을 연주하고 듣는 이곳이 마치 천당 같다는 생각을 했다. 피아노 두 대를 마주보게 두어서 두 명의 피아니스트가 동시에 연주할 수 있게 했다. 한 사람은 수줍은 듯이 앉아서 연주만 했고, 또 한 사람은 벌떡 일어나서 연주할 작품에 대한 해설까지 했다.


피아노를 잘 치는 사람들만 초청해서 연주하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본인이 원하면 연주할 수 있는 시민들의 자발적이고 신나는 잔치인 것이다. 치다가 틀린 음을 치면 다시 시작해도 아무도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다. 여러 곡을 자꾸만 쳐도 비키라는 사람은 없다. 청중들 중에는 전문 피아니스트나 피아노과 교수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오늘은 교수님도 그저 청중의 한 사람일 뿐이다!

내가 살다가 어느 날 외롭다면... 어느 날 우울하다면... 이런 잔치를 찾아서 갈 것이다. 함께 갈 사람이 없으면 혼자라도 갈 것이다. 내가 사는 도시에 이런 멋진 잔치가 있는데 혼자 슬퍼하지 말자! 피아노도 꽃이 되는 이곳에서는 누구나 꽃이 될 수 있을 듯하다. 나도 내년에는 꽃무늬 옷을 입고 가 보고 싶다. 함께 갈 마음 편한 한 사람의 친구가 있으면 더욱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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