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창 이새은/주부
2023-10-16 (월)
편한 것을 좋아하고 게으른 성격이다. 헌데 하고 싶은 일들은 많아 여러 일들을 빡빡하게 채워놓고 이동시간을 줄이는 편이었다. 통근시간이 아까워 회사 근처로 가깝게 이사를 오게 되고 좀 더 회사 셔틀버스에 가까운 집을 선택했다. 집 근처나 마트를 갈 때도 대부분 차를 끌고 다녔고 운동도 동네 한 바퀴를 뛰는 것보다는 러닝머신에서 인터벌로 뛰는 것을 선호했다. 미국에 온 후 정말 다르게 느껴졌던 부분은 거리에 뛰는 사람이 많았다는 것이다. 공원을 가든 어디를 가든 운동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차를 타고 달리는 길에 창밖을 내다보면 아이들을 트레일러에 연결해서 자전거 하이킹을 하는 가족들도 많이 보았다. 처음엔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왜 이렇게 하이킹을 좋아할까 궁금했는데 캘리포니아는 뛰지 않으면 억울할 만큼 일 년 내내 좋은 날씨와 따뜻한 햇빛이 있었다. 미국에 와 내가 가장 바뀐 부분이 있다면 걷는 것을 즐기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아이를 데리러 가는 길이나 친구와의 약속장소에 가기 위해 분주히 걷는 걸음엔 딱히 무언가를 생각할 여유가 없다. 핸드폰 시계만을 체크하며 빠르게 움직일 뿐이다. 하지만 둘째 아이가 태어나면서는 루틴처럼 하루에 몇 번이고 유모차를 끌고 산책을 나와야 했다. 산책은 갑자기 나에게 주어진 강제임무였는데, 강렬한 캘리포니아 햇빛 아래 문을 열고 나가면 바로 마주하게 되는 예쁜 집들은 수십 수백 번을 보아도 매번 감탄하게 만들었다. 천천히 음미하면서 걷는 걸음이 얼마만이었는지.. 다시 만난 이 루틴이 참으로 반가웠다. 장난감 같은 싱글하우스들과 한국보다 훨씬 높이 뻗은 나무들을 구경하며 걷다 보면 어느샌가 사색이라는 것을 하기 시작했다. 다양한 삶의 모습들을 보며 한 곳에만 집중했던 나의 욕심을 내려놓는 연습을 했다. 걸으면 걸을수록 몸도 가벼워지고 마음도 비워지는 느낌이 좋았다.
미국은 집 근처 여러 공원들을 찾아다니는 재미가 있었고 트래킹 할 수 있는 곳들 또한 많았다. 걷기 좋은 환경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다시금 깨달았다. 한국에 돌아가서도 '걷기의 즐거움'은 절대 잊지 않고 지켜내고 싶다는 의지가 생겼다. 새로운 집을 구하는 기준도 집 옆에 걸을 수 있는 공원과 아이들과도 걸을 수 있는 생활동선이 되는 곳을 우선순위로 잡았다. 등하굣길에 아이와 손을 잡고 이야기하며 걷는 시간, 홀로 음악을 들으며 걷는 시간이 소중해졌다. 무엇보다 빠듯하게 쫓기던 일상을 한 템포 천천히 걷게 된 하루가 나를 바로 서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