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에 막을 내린 2022년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구본철 선수는 ‘주짓수’ 종목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는 만20세인 2017년에 취미삼아 MMA(종합격투기)를 배우기 위해 동네 도장에 등록했다.
그런데 등록한 곳이 주짓수 도장임을 뒤늦게 알았지만, 그 매력에 흠뻑 빠져 한 발 더 나아가 선수생활로 그 운동을 이어갔다. 주짓수는 2018년 자카르타 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었으니, “당시 나의 도장 등록은 천운이었다”고 한 그의 인터뷰는 일견 이해가 간다. 이는 일종의 세렌디피티(Serendipity)라 할 수 있겠다.
세렌디피티는 ‘전혀 의도하지 않았는데 우연히 얻게된 중대한 발견이나 발명’을 말한다. 특히 과학/의학 분야에서 실험 도중에 획득한 결과물에 그 예가 많은데, 오늘날에는 ‘예상하지 못한 성공을 이루게 한 행운’에까지 그 의미가 확대되었다.
Luck이나 Fortune도 비슷한 뜻이지만 Serendipity는 좋은 결과로 이어진 경우에만 사용한다는 점에서 그 뉘앙스가 다르다. 세렌디피티는 영국의 작가 호레이스 월폴이 1754년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 포함된 ‘세렌딥의 세 왕자’라는 동화에서 유래했는데, 세린딥(스리랑카) 왕국의 세 왕자가 왕국을 떠나 바깥세상을 여행하면서 모험을 통해 이전에는 미처 몰랐던 새로운 사실과 지혜를 배운다는 줄거리이다.
세렌디피티의 대표적인 사례로는 아르키메데스의 유레카 일화로 유명한 목욕탕에서 우연히 금의 밀도를 측정하는 원리를 생각해 낸 것, 플레밍이 배양접시 뚜껑 관리 소홀 덕분에 세균박멸 항생제인 푸른 곰팡이 페니실린을 발견한 것 등이 있다.
오늘날 필수적인 사무용품이자 홍콩 민주화 운동에서 시위용품으로까지 사용된 3M의 ‘포스트잇’도 사실은 실버 박사가 항공기용 강력 접착제 연구 중에 실수로 접착력이 약하고 끈적이지 않는 물질의 개발로 탄생된 것이다.
특히 의학계에는 발기부전 치료제인 비아그라를 비롯해서 탈모치료제인 미녹시딜과 해열진통제인 아스피린, 관절염 치료제인 인터페론 등 자칫 버려질 뻔했던 연구결과를 발상의 전환을 통해 재활용한 세렌디피티 사례들이 많다.
세렌디피티를 만나는 사람을 Serendipitist라고 하는데, 그들의 주요 특징은 예기치 못한 상황이 일어나거나 계획이 완전히 틀어졌을 때에도 기피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유연한 자세를 견지하며, 오히려 이들을 받아들이고 활용하는 기회로 삼는다는 점이다.
컬럼버스도 정작 인도로 가려다 우연히 아메리카 신대륙을 발견했으니 세렌디피티에 해당될 수 있다. 이에 친구들이 그를 시기하여 성과를 폄하하자, 컬럼버스는 그들에게 달걀을 세워 보라는 문제를 낸다. 아무도 성공하지 못하자 그는 달걀 끝을 깨뜨려 탁자에 세운 후, “처음 하는 것은 무엇이든 어렵다. 그 이후는 누구에게나 쉬운 것이다“라고 일갈했다.
이처럼 세렌디피티는 그저 ‘우물 파다 노다지 캔’ 격이거나 ‘소 뒷걸음질치다 쥐잡은’ 꼴이 결코 아니다. 관심의 영역과 사고의 외연을 넓히고, 당장의 눈앞의 작은 이익을 쫓기보다는 잠재적인 큰 가치를 귀중하게 여길 때 비로소 찾아오는 ‘비범한 행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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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김/전 재미부동산협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