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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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창 이새은/주부

2023-10-09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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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당탕탕 꼬장꼬장

세상에서 가장 가깝기도 멀기도 한 부부관계에 대해 전문심리치료사님의 강의를 들었다. 연애 9년, 결혼 9년 차인 남편과 나는 청춘의 20대를 함께했고 한층 성숙해지는 30대를 보내고 있다. 크게 다툼도 없고 정말 잘 맞는다고 생각했었는데 결혼 10주년에 다가갈수록 그리고 아이가 한 명 더 태어나면서 소소하게 맞춰나가야 할 점들이 이곳저곳에서 튀어나오고 있다. 강의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두 가지는.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나 자신’에 대해 잘 아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과 내가 원하는 것 보다는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작더라도 꾸준히 해주는 게 좋다는 것이다. 사실 남편이 크게 잘못한 일이 아닌데도 작은 말이나 행동 하나에 유독 서운할 때가 있는데 이럴 때 왜 기분이 안 좋은지 내 감정의 원인을 파고 들어가다 보면 결국 내가 원하고 중요하다 생각하는 가치가 어디에 있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미국생활 초기 내 계좌도, 차도 없어 남편 없이는 자유롭게 움직이기도 돈을 쓰는것도 제약이 많았다. 게다가 영어실력도 부족해 어린아이가 된 것처럼 자존감이 바닥이었고 그동안은 아무렇지 않았던 남편의 말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나를 보았다. 화를 내면서도 왜 화가 나는지 이 감정이 무엇인지 알 수 없어 슬프고 답답했는데 지금은 이것이 인정받고 싶은 욕구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곧 복직 할 회사가 있다는 것이 힘이 되었는데, 만약 모든 것을 포기하고 온 이주였다면 정말 나의 정체성이 흔들렸겠구나 싶었다.
웨비나가 끝나고 남편과 서로에게 바라는 점을 한 가지씩 얘기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

나는 다정하고 따뜻한 말을 원했고 남편은 나에게 치약을 끝에서부터 짜서 쓰면 좋겠다고 했다. 예상치 못했던 주문이라 '나에게 원하는 게 고작 치약 짜는 거라고?' 되물었는데 10년째 말했지만 고쳐지지 않았다고 했다. 치약 얘기를 들은 기억조차 없는 나 스스로에게 놀랐고 이런 사소한 부분이 쌓여 불만이 될 수도 있겠구나 싶어 이제는 정말 고쳐야겠다고 생각했다. 사실 치약은 표면적인 하나의 예시일 뿐이고 남편과 나의 다른 성향을 대변한다. 나는 조심성이 없고 중요한 것만 빨리빨리 챙기는 성향이지만 남편은 꼼꼼하고 신중한 성격이다. 우당탕탕 여자와 꼬장꼬장 남자가 만났으니 사소한 갈등이 없는 것이 이상한 일이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나와는 다르게 감정기복이 심하지 않고 말보단 행동파인 남편이 좋았다. 23세 대학생은 어느 덧 38세의 애 둘 아빠가 되어 더 깊어지고 단단한 사람이 되고 있다. 매주 쓰는 글에 남편이 항상 빠지지 않는 걸 보면 나에게 참 많은 영향을 주고 있는 사람이구나 싶다. 결혼생활을 하며 가장 중요한 ‘상대방을 위한 꾸준한 노력’ 간단하지만 막상 어려운 이 노력을 치약뚜껑닫기, 치약 짜기부터 시작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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