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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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창 스테이시 김/노인복지센터 근무

2023-10-05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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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석을 지내며

추석이랍시고 며칠 부산했다. 미국에 살면서 한국 명절까지 차리는 건 조금 무리일까 싶기도 했지만 그래도 한국 문화를 미국에서 태어난 아이들에게 자연스럽게 알리는 계기도 될거라 여기면서 지냈던바다. 아이들이 어렸을때는 집안 살림을 하면서 일을 병행하는게 버거웠으나, 지금은 오히려 즐겁게 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 게다가 성장한 후에도 부모와 같이 지내는 자녀가 있음이 고마워서 이번 추석 음식을 준비함에 주저하지 않았다.

한국음식은 손이 참 많이 간다. 요리엔 재주가 없다보니 늘상 유투브를 의존할 수밖에 없지만 그나마 맛있게 먹어주는 사람이 있어 다행이지 않은가. 식욕 왕성했던 둘째 아이가 집을 나간 이후 사실상 만든 음식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고 버리는게 많아서, 그로서리장을 볼때나 쿠킹을 할때 양을 줄이려 노력하지만 쉽지는 않다. 이번 추석에는 고추전, 깻잎전, 생선전, 게살전 그리고 배추전까지 만들었다. 나물은 명절에 추천하는 종류가 꽤 있더라만 모두 만들 순 없는 노릇이라 두 종류로 제한해서 제일 쉬운 무나물과 박초이나물로 했다. 비싼 갈비 대신 불고기로 하고, 잡채도 준비를 했다. 친정엄마가 살아계실때는 딸아이까지 함께 3대가 오손도손 송편빚던 기억이 있지만, 언감생심 흉내조차 못내고 가까운 떡집에서 구입하는 걸로 직접 빚는 수고는 건너뛰었다.

딸 아이 직장에 유타주에서 온 한인 직원이 있다길래, 아무래도 혼자 타지에 있으면 명절을 지킴이 수월치 않을것이란 생각이 들어 깻잎전과 고추전을 조금 나눠 보냈다. 내 자식이 아니더라도 한인이라는 공통분모는 언제나 마음에 다가온다. 아이들의 배우자가 한인이 될 수 있기를 바라지만, 그게 어디 맘대로 될까. 지인 중 한명은 어렸을적에 미국에 왔기 때문에 영어와 한국어가 모두 훌륭한데, 이혼 후 새로운 배우자를 찾음에 기어이 한국인임을 고집해서 내가 물었다. 외국사람으로 대상을 넓힐 생각은 없는가고 말이다. 그녀는 단호하게, 김치찌개를 먹으면서 한국 드라마를 같이 볼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는게다. 요즘처럼 K-Food가 인기를 누리는 시대가 아니었기 때문에 난 그녀의 주장이 일리가 있다고 여겼다. 음식은 언어와 달리 일상의 삶에 녹아진 기본 문화라서 미국에서 태어난 우리 아이들도 하루 한끼는 꼭 한식을 먹고 싶다 말한다. 굳이 내가 추석 음식을 준비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후후.

한국과 미국에서 지인들의 추석인사 문자가 줄을 잇는다. 동영상도 제법 있고 예쁜 카드도 있다. 살면서 지속적으로 안부를 주고 받으며 지내는 게 말처럼 쉽지는 않으나, 그래도 명절이 되면 생각나고 그리워지는 사람이 있다는 건 축복이다. 모두에게 해피 추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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