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오늘 하루 이 창 열지 않음닫기

여성의 창 이새은/주부

2023-10-02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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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백

나에게 미국생활은 새로운 시작, 정착이라기보다는 밧줄로 정박되어 떠있는 배와 같았다. 돌아가야 할 날이 정해져 있었기에 인간관계에는 기대감이 없었고 오히려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겠다 마음먹었던 미국행이었다. 하지만 간간히 파도처럼 흔들리는 마음을 꼭 붙들어준 것은 다름 아닌 '사람'이다. 오늘 만났지만 내일 또 만나고 싶은 소중한 인연들 덕분에 외로울 틈이 없었던 날들이었다. 이런 마음을 글로 표현해보려 했지만 번번이 노트북을 닫곤 했다. 가득 찬 마음을 정제된 글로 담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는데 그럼에도 나는 고백하고 싶다. 얼마나 감사하고 애정하는지를.

이 곳에서의 나의 관계는 커뮤니티, 딸 학교 학부모, 가까운 이웃으로 나눠 볼 수 있다. 커뮤니티의 힘을 경험한 건 미국에 와서 가장 잘한 일이라고 할 수 있는데, 워킹맘 시절 열심히는 살았지만 나 자신을 다독일 여유는 없었기에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가져야겠다 마음먹고 새벽, 밤 시간에 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지역, 아이, 직업 상관없이 함께 책을 읽고 운동을 하고 글을 쓰며 소통하기 시작했다. 비슷한 마음으로 모인 분들이다 보니 오래된 친구처럼 잘 통하고 '결'이 맞았다.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고 내면을 성장시키며 같은 환경에 있는 사람들에게 힘이 되고자 노력하는 멋진 분들이셨다. 오프라인까지 연결된 모임에서는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주셨고 티타임을 가졌으며 여름엔 아이들까지 함께 수영장 데이트를 했다. 배울 점이 많은 분들 옆에서 나도 꾸준함이라는 것을 실천했고 한층 단단해짐을 느꼈다.

목적있는 모임엔 책임과 의무감이 있었다면, 집 앞 공원, 도서관에서 오며 가며 만난 편안한 멤버들이 있다. 같은 아파트에 사는 우리는 매일 아침 등굣길을 함께했고
자연스레 놀이터에서 만났으며 찐 수다타임을 가졌다. 쌀이 떨어지면 빌리러 가기도 하고 서로의 아이들을 봐주며 '이웃사촌'으로 한 울타리 안에 있는 것 같았다. 유쾌함을 가득 채워주는 언니와 친구들이 있어 매일이 즐거운 요즘이었다.

곧 헤어져야 한다는 사실은 생각보다 슬프고 허전하다. 한 번이라도 더 만나려 약속을 잡고, 내 인생 가장 아름다운 송별회를 가지기도 했다. 합창단 가족, 국적 상관없이 친해진 학부모들, 우연히 산호세에서 만난 선후배까지 이곳에서의 인연들을 한분 한분 떠올려보았다. 생각해 보니 감사하게도 나의 주변엔 늘 좋은 사람들이 많았다. 사회생활은 힘들다 했지만 나는 회사 가는 게 재밌을 만큼 팀원, 동기들이 좋았고 회식자리마저 즐거웠다. 이런 멋진 사람들이 내 곁에 있으니 나도 멋진 사람이라는 확신이 드는 밤이다. 소중한 인연들을 더 꼭 붙들어보려 한다. 어디에서든 마음으로 소통하고 함께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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