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 스테이시 김/노인복지센터 근무

2023-09-21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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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양함을 감동의 하모니로

사실 근간의 나는 마치도 우울증에 걸린 듯 매사에 시큰둥한, 후줄그레 나이든 여성의 모습으로 지냈던 듯 하다. 얼굴에 웃음기는 드문드문, 복잡한 속내를 달래느라 하루종일 몸을 움직이기에 바빴다. 그러다가 펜타토닉스Pentatonix 콘서트가 마운틴뷰 앰피극장Amphitheatre 에서 열린다는 것에 딸 아이가 함께 가자고 해서 집을 나섰다. 잔디 위에 예약된 자리에 어울릴 먹거리를 만드느라 오후 시간 내내 부산했다. 마치도 피크닉처럼 유부초밥, 김밥, 수박, 감자칩, 해바라기씨와 피스타치오, 그리고 물병까지 바리바리 챙겨넣었다. 물론 잔디밭에 앉을 깔개와 담요도 함께. 집을 나설 무렵의 내 손에서는 참기름 냄새가 머물렀지만 명실공히 현존 최상의 아카펠라 그룹의 노래를 듣게된다는 설렘으로 기분이 좋았다.

8시 첫 무대는 아메리칸아이돌 시즌 10에서 2등을 했다는 로렌 알라이나Lauren Alaina로부터 시작되었다. 컨트리뮤직 싱어답게 드레스에 부츠를 신은 그녀는 올해 28살. 동행한 밴드의 현란한 기타음악과 더불과 무대를 휘어잡는 노래에 야외극장의 분위기는 살아났다. 단순한 멜로디에 반복되는 음률에 맞춰 관중들은 자연스럽게 몸을 흔든다. 9시 정각, 컴컴한 어둠 속 정적을 뚫고 나온 진하고도 풍성한 베이스 비트는 펜타토닉스의 등장을 알렸다. 와우!

한명의 여자와 네명의 남성이 빚어내는 음색의 조화는 일순간에 희열과 긴장을 반복해서 누리게 했다. 예일대학 프리메드Pre Med 출신의 비트박서 케빈 올루졸라Kevin Olusola는 전자첼로로 바하의 프렐류드를 연주하면서 입으로 비트를 함께 믹스하는데 그 오묘한 조화를 어찌 설명해야 할지. 미치 그래시Mitch Grassi는 웬만한 여성 보컬보다 더 섬세한 음색으로 멜로디는 물론 하이 톤의 화성으로 환상적인 느낌을 아우른다. 매트 샐리Matt Sallee는 음역이 하이 바리톤에서 완전 낮은 베이스까지 매력적인 보이스를 갖춘 그야말로 매력덩어리. 스캇 호잉Scott Hoying은 그룹소개부터 관중들에게 싱어롱을 유도하는 역할까지 특유의 감성적인 카리스마를 뽐냈다. 유일한 여성 보컬 커스틴 멀도나도Kirstin Maldonado는 중저음의 알토인데 6피트를 넘나드는 남성들 사이에서 5피트 3의 작은 키로 열정적인 노래를 불렀다.

초가을 저녁의 음악회는 여름을 보내면서 새로운 계절을 맞게끔 나를 준비시킨게 아닐까 싶다. 원인이야 어찌됐는 그간 내게 일어난 감정의 소용돌이는 결국 시간이 해결해줄 것이라 믿는다. 지금껏 믿어왔던 삶의 기준은 다른 사람을 향한 판단이 아닌 나를 가다듬는 방책임이 옳다. 서로 다른 음색으로 절묘한 화성을 빚어내는게 감동이었듯이, 여러 다른 삶의 표현과 방식이 감동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소망으로 이 가을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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